표정, 행동, 태도는 의식적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는 있어도 마음 깊숙히 박혀 있는 찐따의 본능을 벗을 수 없다.
상류층.
이 상류층이라는 단어는 위 상이라는 한자어에서 드러나듯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선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에서 한 단계 올라가 궁극적으로는 '상'류층이 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수많은 드라마나 작품에서 상류층에 대해 다루고 시청자들은 이렇게라도 그들을 엿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실상 티비에서 비추는 상류층은 이상적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요즘 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인문학 분야에서 4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2가지 현실을 추론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계급에 대해 이야기가 거론될 정도로 사회가 계급사회로 고착화,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서로를 존중하자고 하지만 실상은 계급적으로 구분을 명확하게 짓고 있으며 자신이 우위에 서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가 후기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통찰력이다. 실제로 멸망하진 않겠지만 과거 계급사회였던 봉건시대가 신흥계급에 도전을 받고 몰락했듯이 점차 계급사회가 되어가는 자본주의시대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것이다.)
여튼 간에 이 아비투스는 쉽사리 벗어낼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속해 있는 집안 가정의 분위기에서부터 20살 성인이 될 때까지 이루어지는 모든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교육으로부터 뼛속 깊숙히 각인되는 무의식의 산물들이다. 한창 사고가 형성될 아이 때부터 20년간 새겨진 것들이 과연 의식적으로 생각을 바꾼다고 고쳐질 수 있을까.
이것은 앞서 말한 찐따 본능도 마찬가지다. 상류층이란 단어를 요즘 잘나가는 '인싸'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그들의 타고난 자신감, 외모, 매력은 축적되어 삶의 경험으로 남지만, 찐따는 그 나름의 경험이 되어 각인된다.
오래 전 필자는 '비주류의 끝'이라는 단어를 적으며 의식부터 철저하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비투스의 변화는 거의 DNA수준부터 바꿔내는 것으로 환골탈태한다는 것과 같다. 지난 20년 간 익혀왔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최소한 20년, 40년 이상을 새롭게 교정하고 교정해야 바꿔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도 어릴 때 해왔던 노력의 수십배 이상의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목숨이 달린 긴급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져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 바뀌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싸든 상류층이든 주류에 들어가는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고, 특출난 무언가를 갖고 나지 않는 이상 그 사회로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궁극에 가서 태생적 한계가 아킬레스건으로 남기도 하니 인간은 끝없는 도전으로 고통받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비주류의 끝.
갈망한다면 희생하고 노력해서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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