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타고 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것은 당연하게 존재해왔던 것들이고, 자연스레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들이라 여긴다.
그러한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 자본들은 물론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익히기 위해 나름대로 안목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며 이것은 노력을 해야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성취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환경이나 인프라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지인에게 우연히 얻을 수 있는 표가, 30분 거리에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겐 하루라는 시간을 써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공짜 표는 커녕 판매처가 부족해서 돈 있어도 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사회적, 문화적 자본들을 접할 수 있는 환경들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것들을 익히기 위해 자신이 들인 노력들만 생각하여, 이것들을 성취하지 못한 이들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결정짓곤 한다. 그들 딴에는 그들의 노력으로 굴러다니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잡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환경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성취는 노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선 어려운 환경에서 특출난 사람을 가리키며 말한다. "봐! 저 사람도 어려운데 성취했잖아? 결국은 노력이지. 환경탓이 아니야."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이 가져온 반례들을 노력의 근거로 내세운다면 사회의 모든 문제들은 개인의 노력 문제가 되어 버리고, 우린 더 이상 사회구조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왈가왈부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것은 당연시하고 특별하다 여기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하지만, 본인들의 겪는 문제는 사회적, 구조적인 것으로 분석하여 제도나 법적인 절차가 고쳐지길 바라고, 또한 정부에 그렇게 요구한다. 그것이 정당한 절차이며,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사회적, 법적, 제도적으로 고쳐지길 바라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며, 그 지적 수준 또한 그만큼의 인프라와 환경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의무교육, 기초 지원 등을 통해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앴기 때문에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뿐이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는 결과는 '국가가 이만큼 도와줬는데도, 그 능력이 미달인 것은 결국 본인의 노력 부족 아냐?'라는 되물음으로 돌아온다. 복지나 도움의 한계선을 짓기도 어렵고 어디서부터 본인의 노력으로 봐야 하는지 경계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코 명확하게 정해질 수 없는 논쟁이니까.
결과적으론 효율성과 인본주의 속에서 적절한 최적점에 대충 맞춰 퉁치고 넘어가는 것 뿐이고, 그 합의점에서 배제당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린 그 배제당하는 쪽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버둥쳐야만 한다.
자신들이 배제당하는 것에는 사회적, 구조적 탓으로 돌리면서 이해를 바라면서, 정작 본인들의 성취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여긴다. 자신들이 타고난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물론 모든 걸 환경탓으로 돌리면 답도 없다.
어차피 환경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모든 것들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개인의 노력은 사회적, 구조적 제도와 환경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우린 늘 자각하면서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기록보존실 > 잡념들-생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소리 큰 유사과학자들과 비전문가들 - 정보섭취보단 정보판단을. (0) | 2020.09.22 |
---|---|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 (0) | 2020.09.20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는 길에 미련을 갖는 사람들에게 (0) | 2020.09.02 |
상류층에 대한 선망과 아비투스 (0) | 2020.09.02 |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슬픈 현실 (0) | 2020.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