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9. 20. 01:00

뭐든지 빠르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

이는 작품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즐길 거리가 많은 독자들은 이것 말고도 즐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고, 작가는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어야만 한다. 작품의 질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독자들의 눈에 띄어야만 한다.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컨텐츠 과잉 시대엔 목소리가 큰 자가 결국 돈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작품들은 변해간다.
서서히 고조되어 마지막에 펑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터져서 끝까지 터진다. 자극적이며 즐겁다. 자극적이지 않은 전개와 과정은 과감히 생략된다. 즐거움만을 처음부터 때려박아야지만 독자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영화는 2시간 내외로 모든 스토리를 끝낼 수 있지만, 독자의 역량과 상상력에 기댄 소설들은 2시간 내외로 이야기를 끝내기란 애매하다.

작품도 변하고 작품을 즐기는 독자들도 변해가고 작품도 다시 또 그렇게 변해간다. 갈수록 작품의 호흡은 짧아지고, 그에 맞춰 특화된 독자들만 남는다. 작품의 즐거움은 가득하지만 뒤돌아서면 잊혀진다. 단락을 빠르게 캐치하지만 맥락을 읽진 않는다. 작품의 호흡은 짧아지고, 맥락도 읽지 못하는 독자들이 늘어만 간다.

이것의 더 큰 문제는 이것들이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이런 맥락을 짚지 못하는 자들이 빠르고 쉽게 확산되는 미디어를 통해 이런저런 논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냥 타인의 발언들, 작품 내용들, 행동들에 대해 딴지를 건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컨텐츠 생산자들은 검열 당하고 사과하며, 이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말이 옳았다고 느끼며 흡족해한다.

우린 이제 논란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시대에 살게 되어 버렸고, 이는 단락만을 가져와 왜곡, 짜깁기, 선동하는 목소리 큰 자들에게 너무도 큰 권력을 쥐어주었다.

목소리 큰 그들은 말한다. '그렇게 말한 건 팩트잖아?' 라고. 대체적으로 저렇게 팩트 따지는 이들의 특징은 앞뒤맥락은 다 짤라놓고 그 사실에만 치중하여 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맥락을 지적하면 귀를 틀어막고 팩트, 팩트 거리며 논란을 키운다.

개소리를 하는 자들은 개무시하는게 답인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우리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조심하며 사려야하고, 그들은 이 모습에 흡족해하며 자신들이 옳다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자찬한다. 맥락도 읽지 못하는데 독선적이기까지 하고, 그런 이들을 한없이 받아주는 시스템이라니 끔찍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세상을 만든 것은 개소리도 받아주는 단체와 기레기들과 그들의 발언에 부화뇌동한 숲속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