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인터넷 꼬리잡기, 비대해진 자아를 지닌 군상들의 집합소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9. 22. 09:08

아주 오래 전에 '우리는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해야지. 어째서 듣지 않냐고 구박할 수는 없다.'라는 글과 '모든 것은 때가 있다/자연스러운 대화' 라는 글에서 필자는 사소한 것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넓어져 버린 시야-각종 정보 때문에 소통에 있어서 우린 몇 가지 문제점을 겪는다.

1.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헤아리려 든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린 무수히 많은 지적질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들 부정적으로 보는 불편충 때문이다. 왜 이 단어를 선택했죠? 왜 이런 시각에서 말했죠? 왜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죠? 등등.

우선적으로 편견은 나쁜 것이 아니다. 편견은 반복된 학습이나 경험으로 치우쳐진 판단력을 의미한다. 치우쳐졌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은 단지 학습의 결과물일뿐 그 자체가 부정적,긍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가령 호랑이는 날쌔고 무섭고, 사람도 헤칠 수 있는 동물이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호랑이를 만나면 몸을 피한다. 그러나 그것도 편견이라며 호랑이와 마주서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물론 까보기 전까진 정확한 결과를 알 순 없다. 문제는 편견이 아니라, 편견을 부수는 무언가가 나왔을때 그 편견을 부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 문제다. 편견은 나쁜 것이며, 사고는 늘 유연해야 하고 모든 것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것 역시 편견이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을 헤아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상 판단력상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행동하거나 발언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것을 헤아린다는 것이 지혜롭다거나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선 오히려 정보를 덜어내고 판단하는 것이 더 똑똑하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것은 투입대비 산출량이라는 효율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2. 남들이 헤아리지 않는 부분을 끝없이 지적질한다.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헤아라는 것들이 더 똑똑해서, 더 넓은 시야를 가져서, 남들이 못 보는 것들을 본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지적질 해댄다. 그들의 발언을 조명하고 이슈화시키는 것은 그들을 이런 지적질에 힘을 싣어준다. 아! 내가 무지몽매한 애들을 깨우치고 있구나! 하고. 어설픈 선민의식을 빚어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들은 그걸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않은 것이다. 여튼 이러한 문제점은 인터넷 특유의 집단 동조화 현상과 사이버 렉카질, '인간은 모두 존귀해! 넌 특별한 존재야'라고 교육하는 현대 시스템으로 인해 비대해져 버린 자아와 섞여서 아주 쓰레기 같은 사고방식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발언들은 인간이라는 존귀한 존재가 하는 발언로서 특별한 것이라 착각한다. 자신이 존귀한 존재이면, 남들도 존귀한 존재인데 말이다. '인간은 모두 존귀해!'라는 사고방식은 '나는 존귀해!'라는 생각으로만 이어진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들이 특별난 거라 생각해서 남들이 사소하다고 치부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꼬집으며 지적질한다. 이러한 지적질을 퍼나르며 이슈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어떤 것이든 간에. 결국 기업이나 다른 단체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춰가야만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전문가들이 목소리를 키우니 기업들이 비전문가 입맛에 맞춰 가는 것과 비슷하다. 가령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백신을 대부분 믿지만, 백신이 부작용이 크다 라는 공포마케팅으로 대다수가 백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제약회사는 백신 생산을 중단해버릴것이다. 돈이 안되니까. 그로 인해 백신을 맞고자 하는 사람들도 백신을 못 맞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비대해져버린 자아를 지니고서 그들은 인터넷에서 자랑스럽게 자신만만하게 떠벌린다. 난 너희들과 달리 깨어있어서 남들이 못 보는 부분도 볼 줄 알고 그래저 깨우쳐 주기 위해 지적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못 보는,혹은 안 보는 것들이, 사소한 것을 어째서 '사소한 것'으로 것으로 치부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쓸데없이 논의를 무제한적으로 확장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어떤 나라의 잠수함 개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잠수함 도입 배경부터 해서 그 나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마음 갖게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주제에 맞춰 글의 화제를 도정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도정의 과정들을, 편견이니 뭐니, 배려하지 않니 뭐니 하며 악의적으로 몰아가며 지적질한다. 그들의 알량한 자존감을 위해 타자의 발언들의 멋대로 재단하고 평가한다고 깎아내린다.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들, 편견에 갇힌 그런 발언들은 결코 그 이외의 것들을 적극적으로 배척한다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남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서 여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언급되지 않는 다른 나라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적질 하는 인간들은 언급되지 않는 부분에 치중하여 꼬투리 잡는다. 그게 꼬투리 잡기 좋으니까. 그걸 그들의 자신들이 우매한 남과 다르게 넓은 시야라고 여기는 것이고.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을 보기 전에 상대방이 언급한 것부터 파악하는게 중요치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결코 고려치 않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게 더 중요하고, 내 말이 더 우월하고 옳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