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다소 편지가 길어지겠네요.
일단 지금은 숙직을 서고 있어요. 별자리도 잠시 보았구요. 하지만 날씨가 흐려서인지 별빛도 약하고 금새 구름이 껴서 가려져 버렸네요. 대신 보름달이 환하게 보이는 밤이네요.
....저는 하지 않았어요. 하지 않았기에 아무일도 없었죠.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신 적 있나요. 정말 흔해 빠져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죠. 저는 돌멩이였어요. 흐르는대로 살아왔죠. 먹어야 하니 먹고, 자야 하니 자고, 돈 벌어야 하니 돈 벌고... 그냥 살아가는대로 살아왔어요.
사람들은요, 욕망이 있어요. 그것이 소박하든, 크든, 착하든, 악하든, 그 무엇이든 그건 그 자체로 사람을 사람같게 만들어줘요. 삶의 원동력이고 삶의 방향이니까요. 사람 느낌이 나는 거죠. 식물은 어때요?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죠. 그래도 식물조차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요. 자연이니까.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아니,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렸어요.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취미도 없고, 활동도 없죠. 그냥 살아가는거예요. 그릇이 작아서 일까. 그냥 가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먹으면 만족해요. 그래서 저는 식물조차 되지 못하고 돌멩이가 되었어요. 매력이 없고, 사람느낌이 없죠. 오해하진 말아요. 정말 사람 느낌 없는 수상한 존재같은 게 아니니까. 그저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거니까. npc같다면 딱 맞겠네요. 여튼 저는 관성대로 살아왔어요. 먹고, 자고, 돈 벌고, 하던 게임하고.. 그냥 그렇게. 어떤 방향도, 목표도 없이 그저 익숙한 삶만을 살아온거죠.
제가 예전에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1마일의 행복을 이야기한 적 있죠? 욕망이 거세되니(득도해서) 오히려 행복해졌다는. 제가 그래요. 그냥 있을 뿐이죠. 어찌 보면 체념 상태였는지도 몰라요. 그냥 일단 시작하고 봐야 하는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오히려 시작도 안 해버리는 거요.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으니까요. 제 삶인데. 저의 삶조차도 체념상태로 있으니 돌멩이처럼 살아간거죠. 스스로가 살아가지 않는데 어느 누가 사람으로 느끼고, 그 사람안의 색을, 매력을 느끼겠어요.
제 블로그를 보면 현실과 대조되게 희망을 강조한 글이 더러 있지요. 제 스스로가 희망이 없다 느꼈기에 역으로 그리 강조한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요 며칠 사이에 조금씩 바뀌는거 같아요. 목표가 생겼다 해야 하나 방향이 생겼다 해야 하나. 욕망이 생겨나고, 삶의 의지가 생겼어요. 어떤 방향을 살아가야겠다는. 체념으로 꺼져버렸던 삶의 불씨가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요.
전 살아갈 거예요.
예전처럼 분명하게 말이죠.
p.s
저번 주말엔 결국 여행가지 못했네요. 비가 오는 바람에 별자리도 못 보고, 그냥 집에서 푹 쉬었어요. 이번 주말은 갈 수 있을까요? 가게 되면 편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