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회성

어둠속검은고양이 2024. 3. 4. 05:31

오랜만이에요.
설날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1월에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떠났는데, 결국 다시 돌아왔네요. 얼마전에 입춘이었는데. 날씨가 다시 추워졌네요.
여러가지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이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어떤 글을 써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은 방백에 불과하니까. 그냥 내 할 말만 하고 털어내버리는 거죠. 사회성에 도움이 안돼요. 사회성은 상호작용이니까.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율해가는 과정이니까요. 할 말은 하고, 또 눈치 볼 것은 보고,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도도 고려해야 하죠.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의도가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요. 대체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내 의도를 중시해요. 내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말했으니, 상대도 내 의도대로 생각하겠구나 하고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걸요. 그래서 오해가 발생하지요.

사실 저도 그래요. 단순하죠. 물론 저와 친한 사람들은 저에 대해 잘 알기에 받아주겠지만, 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일 거에요. 세상 참 복잡하네요. A면 A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참 좋을텐데. 제가 이 곳에 쓰는 글들은 저의 진실된 생각들이지만 이 또한 저의 주장일 뿐이에요. 제 주장을 믿으신다면 그건 광고 하나 없는 개인적 블로그에 여러분을 굳이 속여서 얻을 이득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죠. 제가 남을 속여서 쾌락을 얻는 미친놈이 아니라면요.

여튼 그래요. 그래서 말을 할 땐 한번 더 생각해야 해요. 저도 그게 잘 안되지만요. 말을 할 땐 '상대방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하고 지레짐작을 해야 하는데 이 지레짐작은 사회적 통념에 의존하게 돼요. 그래서 문화와 경험이 중요한 거구요. 예를 들자면, 한국에선 시험 당일날 미역국을 주지 않아요. 미역이 미끄럽다는데서 비롯된 불합격을 의미하니까요.  내 의도가 아무리 건강하라는 의미였을지라도 시험 전날 받으면 상대방은 기분이 나쁠지도 몰라요. 미루어 짐작해야만 하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부분이 잘 안되구요. 미루어 짐작을 성격상 안 하는 것인지, 경험 부족으로 못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 조차도 중요하지 않죠. 결과적으로 안(못) 함으로써 대화가 안 되는 건 같으니까요.

말이 옆으로 샜어요. 말 많은 것도 굉장히 안 좋은 버릇인데.
말하다 보면 의도가 곡해되지 않도록 말을 길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그래요. 설명충이라고 하죠. 하지만 학술적으로 면밀히 따져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길게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곡해는 일어날 거고, 그 곡해가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정도가 아니면 적당히 넘어가는거죠. 애초에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을 한번 더 했더라면, 간결하게 용건만 말함으로써 말이 길어질 필요도 없었을거예요.

굳어져버린 안좋은 대화 습관인거죠.
늘 의식화해서 고쳐야죠. 습관이 되기 전까진 피곤하지만 그래야만 하고요. 어렵네요. 생활 습관이니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성격이나 습관은 고착화되니까요.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성향도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근래에 들어 유독 사회성이 떨어진 것을 느끼고 있어요. 대화 주제도 한정적이구요. 제 관심사 자체가 대중적 취미 생활이나 문화 생활과 동떨어지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했어요. 애초에 일반인에 대해 규정할 수 없는데 제가 일반인을 코스프레 할 수 있을까요.

뭐, 어렴풋이 말할 순 있어요. 회사나 자영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대중적인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고,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으며, 어릴 때 대다수 학생처럼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낸 그런 사람이요. 요즘 트렌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알아서 적당한 스몰토크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요.

전 대중적인 취미도 없고, 말주변이 재밌는 것도 아니라 회사 내에서 내 역할만 치중해요. 그냥 제 성향에 맞춰서 갈수록 사회적 역할극만 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공과 사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죠. 이게 좋다면 좋은 성격이지만, 회사는 하루의 1/3을 보내는 곳이자,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한데,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대로 단점이 있지요. 특히나 제가 다니는 회사는 공과 사 구분이 조금은 모호한, 그런 작은 회사거든요. 그런 사회지요.

저에게 있어서 사회적 활동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에요. 어릴 땐 그래도 적은 에너지로도 사회적 활동을 무난하게 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면서 에너지 소모가 더 커진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엔 어찌 됐든 같이 붙어 있으면서 활동을 하게 되니까요. 대화할 주제도 공유되어 있고,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있으니까요. 사회에서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는 걸 의미해요.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해할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지도 않죠. 첫 인상으로 한번 판단하고, 약간의 대화를 통해 대강적으로 판단을 끝내죠. 그 첫 판단에서 잘 보이기 위해 많은 것을 할애해야만 해요.

하지만 조금 힘드네요. 취미생활을 맞춘다고 해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호감으로서 어필 지점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대화가 잘 되는 것과 대화 주제가 잘 맞는 건 약간 궤가 다르니까요. 대화 주제가 잘 맞으면 대화가 잘 오고 갈 수는 있어요. 할 말도 많고, 들을 말도 많으니까요. 그것이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하나의 매력점으로 어필되긴 어렵죠. 오히려 화법과 그것에서 묻어나는 센스 및 성격이 매력으로 어필되지요. 하지만 대화 주제가 부족하거나 안 맞으면 어필 자체가 어려워져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해야 판단이 서는데, 주제 자체가 안 맞으면 말이 주거니 받거니가 안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 말을 반복하거나, 질문만 하거나, 뭐 서로 뻔한 사회적 연극만 하게 되죠. 펼칠 기회조차 없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사회적인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기로 결심했는데.
몰라요.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인지. 어설픈 일반인 코스프레를 할 바에 나만의 색채를 갖추고 개썅마이웨이로 그냥 살아갈지 또는 사회적이지 못한 색채는 지워내고 일반인 코스프레라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갈지. 전자는 잘되면 굉장히 매력있는 사람이 되죠. 그런 매력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거구요. 하지만 안되는 경우가 대다수죠. 후자는 무난하게나마 지낼 수 있을거에요.
내성적이며 내향적인 저에게 있어 사회적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이 드네요.
그렇다고 이대로만 살아갈 순 없을 노릇이죠.

모르겠어요.
나다운 게 뭔지. 나답게 살아야 할 지.
이 나이 먹도록 아직까지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다니.
편지를 읽는 당신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길 바랄게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자리 편지  (0) 2024.03.21
MBTI 편지  (0) 2024.03.11
오랜만이에요.  (0) 2024.03.04
2024. 01. 01 veracita님께  (1) 2024.01.01
일반인 코스프레  (0)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