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이에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일단 안부부터 물어야겠네요. 그리고 제 안부도 말해야겠어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변함없이 그대로 바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드릴 순 없어요. 이 편지는 방백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볼게요.
우선 사회성.
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건 실패한 것 같아요. 사실 일반인이 뭐고, 사회인이 뭔지 알 수도 없어요.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될 수 있겠어요.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판단하기엔 제 자신이 사회성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과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제 감정뿐이죠. 떠나면서 글 쓰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떠오르는 단상들마저 지워낼 순 없었어요.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자체가 나니까. 가끔씩 글로 정리했을 뿐이죠. 편지도 한번 썼었고, 올릴 글들이 제법 많네요. 제대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이지만. 결국 관성적으로 살던대로 살아간 거죠. 익숙치 않은 것을 해보려니 불편해서요. 그냥 하던대로, 나답게 살아가는거죠. 그것이 밉든 곱든 간에 말이죠. 그래도 관성적으로 사는 것보단 늘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야기.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요. 그리고 이야기를 보고, 보고 또 보죠. 세상의 모든 컨텐츠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그것이 글로 표현됐냐, 영화로 표현됐냐, 그림으로 표현됐냐 차이뿐이죠. 저도 이 곳에다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고, 자꾸만 이야기해요. 태초의 신화부터 이야기로 표현되니,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야기 하는 것이 본능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만드는 창조능력은 개개인마다 다르니, 본능을 표출할 수 있는 것 조차도 재능의 한계로 제약된다니 슬픈 현실이에요. 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자신이 꿈꿔오던 이야기를 표현해준 영화, 표현해준 소설들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작이 되겠지요. 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본인이 만들어내야 해요. 본인의 인생을 걸고서 말이죠. 사람들 인생 하나하나가 소설인 거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관객으로서 이야기를 보기만 하는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본인의 인생들도 보기만 하는 것 같아요. 저부터도 내 인생을 소설로 만든다면 재미없는 반복이 대부분인 걸요. 내 인생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써내려가야 하는데, 써 내려가기는커녕 그냥 흘러가듯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어요. 창작엔 엄청난 고뇌가 있듯이 내 인생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참 어렵네요.
전 만화책을 좋아했어요. 여전히 만화책을 좋아해요. 다만 웹툰을 주로 보고 있지만요. 판타지 소설도 좋아했구요. 그저 이야기가 재밌으면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다들 그렇죠. 지난 날의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수집하는 것도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과 같죠. 다시 펼쳐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작품을 수집함으로서 이 재밌었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내 손안에 계속 남아있을 거라는 그런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수집 못했던 것을 돈을 벌면서 소소하게나마 이루어가고 있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네요. 괜한 집착인가 싶기도 하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왔어요. 적당히 공부 열심히 하고, 적당히 좋은 대학 들어가면, 적당히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서 무난하게 흘러갈 것처럼 살았죠. 이야기를 좋아했던만큼, 이야기를 수집했던만큼, 제 이야기도 열심히 써내려갔다면 좋았을텐데. 정작 제 이야기는 흘러가는대로 굴곡없이 살아왔죠. 그 대가가 바로 지금이에요. 활자의 나열만이 존재하는 제 소설은 너무나도 재미없고, 개성없어서, 어찌 글을 써내려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어요. 사회성은 서로간의 적절한 교류지만, 그 교류의 원천은 각자의 개성적인 소설이죠. 저 사람은 저런 매력이 있어서 앞내용이 궁금해. 그 사람은 그런 매력이 있어서 뒷내용이 궁금해. 반대로 난 이런 매력이 있어. 내 소설을 보여줄테니 네 소설도 보여줘. 쌍방의 교환인거죠. 그 교환에서 볼품없는 소설을 내밀면, 읽지도 않고, 반대로 들려주지도 않죠. 다른 소설과 맞교환하기도 바쁜데.
무개성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저 사람이라는 가죽을 뒤집어 쓴 병풍같은 배경일뿐 그 이상이 되질 못해요. 안타깝게도 제가 지금 그런 상황이구요. 그래서 뭔가 변해보려고 했는데. 필체를 억지로 바꾼다고 소설이 재밌어지진 않잖아요? 그 필체에 맞춰 소설이 완벽히 바뀌는 것도 아니구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옛 사랑이야기 뿐이에요.
그것만이 유일하게 나로서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죠.
했던 얘기를 또 한다거나, 옛 사랑 얘기를 꺼내는 남자는 정말 찌질해보이고 없어보일 테지만, 어쩔 수 없네요.
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또 써내려가요.
전 사랑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 사랑은 해봤죠. 다만 그 사랑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을 뿐.
그것이 자의였든, 실수였든, 그 무엇이든 간에. 사랑이라든가, 연애라든가, 그런 것들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하듯 자연스레 이루어질 줄 알았어요. 너무 안일했던 탓이고, 그 황금기 같았던 시기를 지나쳐버리니 사랑은 이제 저와는 인연이 없는 단어가 되어 버렸네요. 대학생 땐 그래도 썸도 여러번 타보고, 자연스레 여사친들과도 어울려 지냈으니 그저 연애도 자연스레 될 거라 판단했던 거죠.
제 첫 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웃음이 따뜻했던 여자애였죠. 고백도 못하고 졸업실날 차였어요.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역시나 대학시절의 그 사람 뿐이네요. 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이 블로그에 사랑의 주제인 사람.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잊었다고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 후로 다른 여자를 사랑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유일한 사람. 이제와 사진 하나 남기지 않았던 것이 아쉽네요. 초봄 공강시간에 잠시 집에 돌아오면 내 방에서 쿨쿨 자고 있던 모습이라든지, 무더운 여름날 창덕궁으로 밤산책 갔던 거라든지, 배게가 하나뿐이라 팔배게 해주며 밤새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던 거라든지, 추운 겨울날 달동네 옥탑방에서 같이 이불 뒤집어 쓰고 작은 탁상에 노트북 놓고 영화를 본 것까지. 서로 사귀자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지만, 아마도 연애를 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덕분에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기도 했네요. 그러나 저의 연애는 이 때 이 시절 이후로 나아가질 못했어요. 대학생 시절 그 이상이 되질 못한거죠. 그래서 여전히 연애를 상상하면 이런 풋풋한 연애를 꿈꿔보지만, 이제와선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대한민국엔 나이에 따라 정해진 행동들이 있으니까.
옛 사랑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는 것만큼 청승맞은 것도 없죠. 이미 지나가버린 이야기를 해봐야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그저....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전 그래서 사랑 이야기를 제일 좋아해요. 러브코미디 장르를 좋아하죠.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 행복한 결말에 다다른 사랑 이야기를 보면 참 부럽죠. 현실에선 불가능하니 작품으로 나오고,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시절, 왜 경험을 많이 해보라 하고, 연애를 많이 해보라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왜 젊음을 소중히 여기는지도 알 것 같구요. 청춘이 한번 뿐이라는 말을 이제 와 깨달아요. 그 때만 해 볼 수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 못할 핑계만 계속 늘어나요.
오랜만에 돌아와서 청승맞게 지난 사랑 타령만 잔뜩 늘어놓았네요. 그래도 지난 사랑 이야기를 해보라 하면 바로 손꼽아 볼 수 있는 사랑이니까. 가끔가다 궁금하긴 해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은 우리가 그 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도. 일단은 그냥 쓰던대로 글이나 계속 쓰게 될 것 같아요. 한동안 떠나있으면서도 썼던 글들도 가감없이 그냥 올릴게요. 쓰다 만 것들은 조금만 다듬어서 올리구요.
처음처럼.
그냥 느끼는대로, 감정이 가는대로.
애초에 이 블로그의 목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