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4. 01. 01 veracita님께

어둠속검은고양이 2024. 1. 1. 11:15

오랜만이에요.
2024년 1월 1일, 첫 편지를 써봅니다.

이 편지는 veracita님, 당신께 보내는 편지에요. 한동안 글을 안 쓰기도 하고,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어찌저찌 이 블로그를 10년 이상 유지했네요. 첫 가입일이 2013. 02. 28이니 곧 11년차가 될 지도 모르겠군요. 언제부터 이 블로그를 지켜봐주셨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지켜봐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추천 받으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이젠 하트에 숫자 1이 없으면 뭔가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당신께 편지를 한번 쓰고 싶었어요.

새해라서 뭔가 거창한 다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날짜는 그저 인류가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하니까. 해가 넘어가고, 달이 넘어가도 그건 날짜라는 이름의 숫자가 바뀌는 것 뿐이지, 해가 뜨고 지는 하루라는 과정은 여전히 똑같으니까요.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겠죠.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는 아닐 거에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겠죠.

사실, 전 veracita님을 한번 찾아뵙고 싶었어요. 어떤 의미로든 제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와 주시고 관심 가져주신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거든요. 어떻게 잘 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잘 살고 계실거라 믿어요. 제가 기억하는 veracita님은 힘들거나 불안해하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제 몫을 해내가는 분이셨는걸요.

아시다시피 저도 오랜 회피생활을 끝내고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월급이 적다며 투덜거리며, 그래도 혼자 살기엔 넉넉한 금액으로, 소박한 욕망들을 충족시키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갇혀 있던 20대엔 그렇게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이젠 편한게 최고더라구요. 딱히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굳이 치자면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넉넉한 돈? 제가 돈이 많길 바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단단한 보호막 같은 거에요. '이정도 돈만 있으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겠다.' '진정한 경제적 자유다.' 와 같은 환상이죠.

말이 또 길어졌네요.

2023년 마지막 글을 일반인 코스프레라는걸 본 적 있죠? 그래요. 일반인 코스프레.
아시다시피 전 이질적인 사람이에요. 제가 특별하거나 잘나서가 아니고요. 전 인류적으로 보면 분명 저 같은 사람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제 주변을 보면, 그리고 대학시절 주변사람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그냥 사람들을 보면 전 분명히 대중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애 같고, 웹툰이나 만화책 좋아하고, 보드게임이나 레고를 좋아하죠. 나이대에 맞지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죠. 그저 사회성 떨어진 사람1일 뿐이에요. 어느 누가 이렇게 블로그에 재미없는 글이나 꾸준히 쓰고 있겠어요. 개성이 아니라 재미없는, 사회적이지 못한 특징 중 하나지요.

그래요. 일반인 코스프레.
전 일반인 코스프레 하려구요. 어릴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이 먹고 나서야, 돈을 벌면서,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는데, 늦어버린 거 같아요. 마치 다 큰 어른이 어린 아이의 옷을 입으려고 애를 쓰는 것과 같지요. 그 시간대는 그 시간대만의 경험이 중요해요. 뭐 흔히들 그렇게 말하잖아요.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마라. 남들이 알아봐주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뭐 그런 것들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나의 취미니까, 남들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은 맞는데, 사람의 사회적 동물이거든요. 사회적 동물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질적인 것들은 배척해요. 그래서 각자가 하는, 각자의 시기마다 겪는 경험들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시기를 놓치면 사회성이 떨어지거든요.

말이 또 길어졌네요. 이것도 굉장히 안 좋은 버릇인데.
결론은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거에요.

글을 쓰는 것. 어릴 적 좋아했던 그 모든 것들. 재미없는 버릇. 사회적이지 못한 버릇들. 그런 모든 것들을 고쳐보려고요.
줏대없이 휘둘리는 것보단 줏대를 갖는게 중요하긴 한데 그 줏대가 사회적이지 못하다면 억지로라도 맞춰야지요.

짐작하셨겠지만, 이 글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요.
2024년 1월 1일, 첫 시작부터 이별을 선물하네요. 미안하게도.

그래도 이 블로그를 꾸준히 관심가져주시고 찾아와주신 veracita 님께는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3년 한 해도 수고 많으셨어요. 2024년은 정말 모든 일이 잘 되길 기원할게요.

p.s
그래도 당초 목표대로 10년은 넘겼네요.
메일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Si vales bene, va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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