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사회적 신뢰도를 박살낸 LH 사건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3. 11. 12:20

공(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기업은 어느 한편의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모든 국민을,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 모두를 위한 기업이다.
그렇기에 공무원이, 공기업이, 공직자라는 자리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일개 개인이, 일개 단체가, 감히 다수 - 공공을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로서 그 상징성은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LH사건은 이러한 신뢰를 완전히 부숴버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다. 만에 하나 이들이 완전히 해체된 후에, 그 자리에 새로운 공기업이 생겨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뭘 믿고 업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사회적 신용도, 사회적 신뢰도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사회 속에서 꾸준히 작동된 끝에 형성된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공과 과를 구분하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바 일을 다한 끝에 불완전한 모습이 점차 개선되어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체계와 제도가 좋은 방향으로 확실하게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것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즈그가 공부 못해서 들어오지 못해 놓고 이번에 꼬투리 잡아서 열폭한다'라든가, '즈그들도 적당히 해 먹으면서, 즈그들이 못해먹으니까 배 아파서 그런다'와 같은 오만방자한 발언은 분노를 일으킨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에서 '믿음'이라는 가치를 믿고 맡긴 결과를 정면으로 후려놓고서 이 따위 발언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한 짓은 단순히 일회성 부도덕한 범죄가 아니다. 차라리 단순한 범죄로 끝났으면 다행이다. 이번 사건이 사회의 신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사회적 불신감을 퍼뜨렸다는 걸 알고나 있는가. 이전의 신뢰 있는 사회로 돌아가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영영 안 올지도 모른다.


공기업, 공무원, 공직자. 공(公)자가 들어가는 곳을 더욱 엄격하게 다스려야 하는 이유다. 화폐 위조는 국가의 화폐에 대한 신용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강력하게 처벌한다. 그런데 어째서 국가와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공공 범죄는 사과문으로 적당히 치고 넘어가는가. 윗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맡은 바 자신의 소신대로 행하라는 안녕이 이젠 면죄부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공기업과 정부를 믿지 않을 것이고 '나도 저렇게 권한과 내부 정보로 요리조리 헤쳐먹고 빠져야겠다. 걸리면 그만두지 뭐.'와 같은 도덕적 헤이가 만연해질 것이다.

과거 필자가 글을 썼듯이,
1. 이제는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 맡기는 시대는 끝났다. 이젠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상으로 부패를 저지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도덕적 양심에 기대어 제도와 법을 느슨하게 한 대가를, 믿는다는 이유로 확실히 알려고 하지 않은 대가는 컸다. 투명한 정보공개와 부패에 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2. 돈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것은 부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일뿐이다. 공급과 수요에 의한 돈의 희소성은 부자들에게나 해당될 뿐, 빈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빈부격차가 커져서 계급이 고착화되고, 돈이 돈을 벌고, 노동의 가치가 떨어질 때, 경제 범죄는 기승을 부린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에서 계급 상승의 유일한 길은 시드머니를 마련인데, 시드머니를 더 이상 노동으로 마련하기 힘들 때, 사람들은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특히나 처벌이 약해서 범죄에 따른 보상의 기댓값이 상대적으로 높아져버린 시대다. 범죄를 안 들키면 돈은 수중에 남을 것이고, 이는 영원히 내 계급을 고정시켜 줄 것이다. 혹여 발각돼서 처벌을 받더라도 어차피 평생 돈만 바라보면서 빌빌 거리다 갈 삶인데,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것은 매한가지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주장하던 정부는 지금 사회적 신뢰도를 개박살 내버렸다. 그들의 주장을 이번에 과연 관철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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