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3. 3. 09:00

누군가로부터 내가 고려치 않던 선택지들이 생각보다 괜찮은, 매력적인 선택지 일 수 있다는 소릴 듣는다면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존감을 외부로부터 회복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서도. 여튼간에.


밑바닥이라 생각했던 것들 밑에 더 한 바닥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인생을 채 차오르지 못하고 바닥 없는 늪으로 끝없이 가라앉고만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주변은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하자들과 걱정들로 자존감은 한없이 바닥을 친다. 그리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하면서 자존감 깎아먹는 것이 문제라는걸 잘 알지만 눈을 뜨고 있으면 풍경이 보이는데 어찌 할까.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이 풍경을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한스러워하기도 한다.

뭐든지 간에 애매한 것이 안 좋다. 차라리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승리해서 쟁취하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이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내가 고려치 않던 선택지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생각보다 괜찮은,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소릴 듣는다면 상당한 위로가 된다.

그건 타인의 불행을 놓고서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의 이 고민이 배부른 고민일 정도로 내가 나은 상황이라는 비난도 아니다.

그건 그저 내 상황들이 도망칠 곳 하나 없이 고립된 상황이라는 절망감 속에서 나름의 탈출구가 있다는 작은 안도감과 희망에서 오는 위안이다.

현재 상황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나아지는 건 없다. 보이는 풍경들을 쟁취하지 못한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나에게 회피, 실패로만 보이던 선택지가 누군가에게는 합리적인 이유로 기꺼이 선택할 정도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은 마치 내가 이 선택을 하더라도 결코 도망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지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어쩌면 우린 선택과 불안 앞에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믿어.'와 같은 그냥 형식적인 지지보다 '너가 이 선택을 하든, 저 선택을 하든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기에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는 좀 더 확고한 지지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희망을 기대하며 첫 술을 뜨게 된달까.


나의 앞날이 생각보다 그렇게 최악인 것은 아니라는 걸 직시하는 건, 걱정으로 절망하는 대신 사소한 것일지라도 극복하려는 의지와 긍정적 태도를 갖게 해준다.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다.
절망하지 말자.
그러나 안주하진 말자.
충분히 최악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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