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중에 비스타즈라는 만화가 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세계를 다룬 만화다. 그 세계에서 육식동물은 억압해야 할 동물로 취급을 당한다. 그들은 강대하니까.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조심해야 하고, 긴장해야만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성장을 약으로 억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곰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인사의 의미로 잽(zap)을 날렸지만, 그 잽으로 인해 인간이 팔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육식 동물은 연약한 초식동물을 배려해야만 하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서 행동해야만 한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존중받긴 한다. 초식동물은 초식동물대로, 육식동물은 육식동물대로 그들의 신장에 맞는 집과 그들의 각자의 역할에 맞는 직장을 갖는다. 필요악으로서 진짜 고기를 파는 뒷골목 시장도 존재하고, 육식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케어해주는 병원들도 존재한다.
진짜 현실 속 사회를 보는 것 같다.
생각보다 일상과 가까운, 온갖 지저분한 일이 있는 뒷골목 세계와 그곳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아무것도 모른 채 적당한 규제와 제도 속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과 혹은 시선들 때문에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까지도. 저마다 지니고 있는 옳다 그르다는 정의와 그 정의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현실적 세계들이 뒤섞이는 모습들이.
이것을 현대 사회에 비추어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부자라고 해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였다. 필자는 과거에 사람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심각한 고민이 있을진대, 그들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기만자라고 놀림받는 것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있다. 과연 부자라고 해서 아니꼽게 보는 것들 이러한 것들을 감내해야만 하는가. 왜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안되는가. 그들도 인간인데.
물론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거지들은 부자들보고 저 배부른 돼지새끼들! 하고 욕해도 되지만, 부자들은 거지들에게 거지라고 놀리면 안돼. 그러면...너무 불쌍하잖아?' 라고 유머를 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왕관을 쓰려거든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과 유사하겠지만, 그들이 공인들도 아니고, 자신을 욕하는 사람에게 10원 하나 이득본 것도 없는 존재인데, 왜 그들의 비난과 힐난을 받아주어야만 할까. 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사회라는 제도와 인프라 덕분이라고. 그러나 그 인프라와 제도는 공공의 재산이고, 특별히 그들만을 위해 제작된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는데 10원이라도 보태주고 욕하는거라면야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저 국가만 같은 전혀 다른 세계의 타인에게 왜 욕을 먹어야만 하는가.
사람의 여유로움과 자신감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사람마다 그 그릇의 크기도 다르다. 그 그릇의 크기는 자신이 가진 것과 비례하는 법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엄청난 자산을 가진 연예인들도 악플로 자살하는 세상이다. 빌 게이츠 정도의 압도적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사는 세계가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야 나쁘겠지만서도 '까짓거 욕해라. 니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난 신경 안 쓴다. 어차피 니들이나 나나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일 뿐이데, 내 인생을 즐겁게 사는게 중요할 뿐. 내 할 일이나 하련다.' 같은 마인드로다가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의 세계가 다른 이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여긴다면, 그들에게 받는 힐난들은 매우 고통스럽다. 세계로부터 거부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매달 월급으로 살아가기도 벅찬데, 타인에게 욕먹으면 먹으면 당연히 기분도 나쁘고, 그것을 받아줄 심적 여유도 없다.
타인을 힐난하는 것도 그들의 인생이 풀리지 않기에 타인을 물어뜯음으로서 해소하는 거겠지만,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입장을 우리가 애써 이해해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들이 타인의 입장을 생각지 아니하고, 존중하지 아니하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존중해줘야만 하는가. 여하튼 간에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만의 세계가 있는 법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많다고, 그런 옹졸한 존재들에게 욕 먹어야 하는가. 그것을 감내해야 할 의무가 어디에 있는가. 비스타즈의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처럼 각자 지니고 있는 본성과 그릇이 있을진대, 최대한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조율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사회인데, 육식동물에게 초식동물에 대한 일방적으로 배려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분명한 희생의 강요이며, 그것은 사회의 분열로 나타나고 말 것이다.
p.s
물론 초식동물의 입장도 이해될 법하다.
육식동물이야 귀찮음, 억울함, 뭐 이런 것들에 지나지 않지만, 초식동물에게는 생존이 달린 일이다. 곰은 장난으로 잽으로 인사하지만, 그 잽이 초식동물에게는 사지가 분해될 펀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간다. 비스타즈는 현실 속 사회를 좋은 비유로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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