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박사모에 대한 재이해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7. 2. 17:59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깨진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필자는 예전에 박사모에 대해서 혹평을 한 적이 있다.

옛 가부장제의 잔재로서 남아있다는 생각과 함께 혹독하게 비난의 날을 세운적이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가부장제는 타파해야 할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도 삶의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사를 좋아하고, 내조하는 게 편한 여성과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싶어하고, 또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남성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가부장제가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부장제가 가장 익숙하며, 마찰이 가장 적은, 편안한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의 젊은 세대들, 현재의 변화된 사회적 환경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며, 그렇기에 이제는 구시대의 잔재로 남아있게 됐을 뿐이다.


여튼 간에 그 당시에 필자는 박사모에 대해, 그리고 가부장제에 대해 삶의 방식으로 인정치 않고 없애야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과격한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이해를 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썼겠지만, 단지 세뇌와 무지한 교육이라는 두 단어로 치부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박사모나 박정희의 신화를 믿는 사람들을 단순히 세뇌와 무지한 교육의 탓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도 절대적 믿음을 지니게 되었을까.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부모형제가 굶주리고 있는데, 박정희라는 대통령 덕분에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그것을 분명히 몸으로 체험했다. 허허벌판이던 곳에 공장이 세워지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생필품이 만들어지고, 돈을 벌게 되어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자신들이 배워왔던 것들에 대해 왈가왈부한다고 과연 대화가 될 것인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해왔던 사람들을 향해서, 책으로만 배운 젊은이들이, 타인들이 내가 믿어왔던 절대적 신화에 돌을 던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 의문을 표하고 전면적인 부정을 가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깨어져 가는 믿음 앞에서 누군가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 것이고, 누군가는 상대방을 향해 욕이나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최대한 투쟁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러한 변화를 그저 담담하게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필자는 박정희 라는 대통령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 입장이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필자는 부정하는 입장에 속한다. 이러한 공적에 대해서는 굳이 이 글에서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박사모, 박정희의 신화를 믿는 이들이기에.


필자가 박정희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인만큼, 박사모, 그리고 박정희의 신화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세뇌나 무지한 교육의 일환으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세뇌, 무지한 교육 이라는 이 두 단어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그들의 삶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지난날 삶의 궤적이 있을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필자는 그들의 삶의 궤적에 동의할 수 없기에 그들과 난 평행선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구시대의 찌꺼기도 아니고, 청산해야할 잔재도 아니다. 그저 평행선으로 남아있을 입장차일 뿐이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