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불쾌감이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된다.' 라는 전제와 '행동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뉠 수 있다.'라는 전제가 만났을 때,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불쾌-불편함을 피해입은 것으로 판단하게 되고, 이것을 도덕적 정당성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감정의 영역과 도덕적 정당성의 기준은 분명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감정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그것의 공집합이 공감될 수는 있으나, 그러한 공감이 정당성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주관적 감정 영역을 공감으로 포장하여 정당성에 대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분명한 폭력이며, 억압이다.
우린 공감하지 않는 자에게 돌을 던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
우리가 '명백하게'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법에 의거한 경우 뿐이다.
도덕과 윤리의 영역은 문화적, 관습적 영역에 있는 것이고, 이 역시도 어느정도 정당성에 대한 판단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다분하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정당성만으로 행동을 나누기엔 애매모한 지점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은 실수일 수도 있고, 고의일 수도 있으며, 우연의 곂침, 사고일 수도 있다. 그러한 지점들은 안팎이 명백히 구분되지 못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흐릿해지는데, 우리는 단편적 정보를 가지고 손쉽게 피해자-가해자로 나누곤 한다.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기 위해서 단편적 정보만을 취하기도 한다.)
※ 어쩌면 이러한 필자의 주장 저변에는 '개인'으로서 강요와 획일된 모호한 기준에 대한 거부반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p.s
감정적 불쾌감이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하게 되는 이유는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도덕인가? 도덕은 법률적, 문화적, 관습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이러한 것들 역시도 '왜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못한다. 법률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 문화와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도덕들은 해당 사회내에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은 것이며, 이러한 약속이 깨어져 나갈 때, 우리는 '불쾌함' 혹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도덕적 정당성은 본래부터 '사회적 통합성'을 저해하거나, '감정적인 불쾌함'을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이는 분명히 어려운 문제다.
어디까지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보아야 하고, 어디까지를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보아야 하는가? 애초에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 수가 있는가? 결국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최소한의 것 - 법률 에 의거한 기준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 관습이라는 애매모한 것에 기대어 불완전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렇듯 모호한 기준들이 과거에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육으로 인한 전체주의적 사고로 억압되어 있는 구조라서 가능했던 것을 아닐까 추측해보는 바이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논란들이 많아지는 까닭은 전체주의적 사고가 개인주의적 사고로 옮겨지면서, 절대적 진리, 하나의 기준, 획일성 등이 사라지고,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저마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만 할뿐이다.
어떠한 행동, 행위의 정당성 논란은 더욱 더 증가될 것이고,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록보존실 > 잡념들-생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예인화 되어가는 작가들 : 허물어지는 경계와 엄격한 잣대 (0) | 2018.07.24 |
---|---|
과학적 사실과 차별의 문제 (0) | 2018.07.22 |
박사모에 대한 재이해 (0) | 2018.07.02 |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본다는 것 - 상담의 필요성 (0) | 2018.06.30 |
빈부격차가 위험한 이유 (0) | 2018.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