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발전에 의한 SNS의 발전은 모든 이들을 배우이자 관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과거 여러 배경에 의해 소외됐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와 힘을 주었으나, 모든 이들에게 제한없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1.
언론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구독자 수, 클릭회수에 집착하게 된 것 역시도,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함이 크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가공, 생성하기는 매우 쉬우나, 현실에서 정보를 검증하고 작성하기 위해선 꽤나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어간다. 언론은 SNS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경제적(?) 시스템을 가지고서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보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자극적이냐 이다. 어쩌면 음식보다도 더 휘발성이 강한 정보는 겉포장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일단은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언론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2.
다시 돌아가서 SNS의 발전은 창살없는 감옥-현대판 판옵티콘을 향한 초석을 마련해놓았다. 모두가 모두를 지켜보는 관객이자, 모두의 눈길에 만족해야 하는 배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의식을 불러오고, 또 타자를 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정작 상정된 인터넷 관객의 기준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롭지 못하다. 필자 역시도 여러가지 생각들을 말하는 것이 어려워 이렇게 티스토리를 이용하는데, 사람들이 SNS 활동을 접거나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은 이러한 자유를 원해서 그런듯 싶다. 특히나, 사이버 관객들의 도덕적 기준 마저도 '목소리가 큰' 여론전에 의해 세워질 가능성이 농후한데, 웃긴 것은 배우와 관객이 나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서로가 무대에서 배우처럼 활동하면서 배우가 아닌듯 관객처럼 지적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코메디다.
3.
모두를 향한 정보의 공개는, 특히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족쇄가 되었다. 필자가 SNS의 발전이 모든 이를 관객이자, 배우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 이들을 염두해두고 한 말이다. 작가가 오로지 자신의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작가들의 개개인의 삶 자체에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고, 이것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들 자신이 연예인화 되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유명한 방송 BJ가 된 웹툰 작가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과거에 했던 발언들과 현재 방송에서 하는 언사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기록되다시피 하며, 이들의 과거는 수 많은 사이버 전사들에 의해 파혜쳐지고, 난도질 당한다. 이들 고유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생각들은 수많은 오지라퍼들에 의해 검열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독자들이 작품과 작가를 찾아보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작품감상을 위한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이 되어버린 작가 자체를 재단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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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삶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가는 실정이다. 문학, 출판, 미디어, 작가, 연예인은 크게 보면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라 볼 수 있지만, 각 영역은 뚜렷한 분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으며 말 그대로 1인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맞아, 자신만의 컨텐츠로, 분야에 상관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영화 '트루먼쇼'가 다가올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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