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적 층위와 현실적 층위는 다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 보자.
서울시는 20-30대의 청년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고로 20~30대 청년들은 혜택을 받고 있다. 라는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틀린 주장인가? 옳은 주장인가? 논리적으로는 옳은 주장이다. 근거(20~30대 청년은 청년수당을 받는다)가 결론(20~30대 청년은 혜택을 받고 있다)을 적절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 적용해보자.
'지나가던 20~30대 청년에게, 20~30대는 청년수당을 지급받잖아, 그러니까 너는 청년이라서 혜택을 받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이에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나가던 20~30대는 황당할 것이다. '뭔 개소리야. 난 청년수당 받아본 적도 없는데, 고작 3000명에게 지급하는 청년 수당가지고, 내가 청년이라서 혜택받고 있다고? 장난하나'라는 격양된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20~30대 청년들은 청년수당을 지급받는다. 고로 20~30대 청년들은 혜택을 받고 있다.' 라는 명제가 현실로 내려오는 순간, 청년수당을 지급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 사람들에게는 20~30대 청년들은 청년 수당을 지급받는다는 근거가 적용이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명제가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려면 '20~30대 일부 청년들은 청년수당을 지급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20~30대의 일부 청년들은 혜택을 받고 있다.'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
명제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에서 옳다는 보장은 없다. 이 부분 때문에 현실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필자가 지인과 젠더문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인이 법적 판결에 있어서, 남성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남성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주장을 하였는데, 이 주장이 필자는 이에 '심적 동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순간적으로 '무슨 소리지? 난 남성이라서 법적 혜택본 적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일반 남성들은 법적 판결을 받을 일도, 법원에 갈 일도 거의 없는데, (자신의 삶과 무관 부분인) 법적 판결이 남성 위주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남성은 혜택받고 있다는 것은 수긍이 안 될 것이다'라고 응대했다. 그리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분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 현실적으로도 (남성)성범죄자들에 대해 기소유예에 그치는 관대한 판결이 많다는 점에서 이태까지 법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로서 남성은 법적 판결에서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 필자가 반박했던 것처럼, 혹 일반 남성들이 저 명제에 기분이 상하는 것은 남성들에게 실질적인 체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체감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한 현실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범죄에 대해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례가 굉장히 많으니까. 하지만 성범죄와 얽힐 일이 없는 남성들, 법원에 갈 일 없는 남성들 입장에서는 '법적 판결이 남성에게 유리하니까,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라는 주장은 전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성범죄로 얽힐 일도 없는데, 법원갈 일도 없는데, 나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혜택보고 있다고 말하면 수긍이 되는가. 이것은 마치 독신주의자 여성을 향해, '여성은 결혼할 때 비용부담이 적으니까, 너는 여성이라서 혜택보고 있어!'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층위는 늘 명제적 층위로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현실적 층위다. 나와 무관한 현실적 사례를 가지고 와서 그 사례를 근거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공격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면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남성 성범죄자들에 대한 기소유예가 많이 일어나므로, 현재 법은 남성주의 시각이 많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러한 판결, 양형기준, 제도를 고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면, 필자는 심적으로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이 '그러므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라고 한다면, 공감이 되겠는가?
인터넷에서 옳고 그름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이 부분이다.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옳음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명제적 층위에서 논리적으로 따지고 든다. 물론 사람을 설득하는데 있어서 일관된 논리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논리가 상대에게 먹히는 것은 상대가 해당 근거에 대해 동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당성을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씀으로써 소모적 논쟁만을 일삼는다.
'여성은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한국은 가부장제 사회였고, 여전히 여성들이 차별받는 부분이 많다.'
'결론은, 여성들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남성들도 참여주었으면 한다.'
라고 말을 했다면, 수 많은 남성들이 동의했을 것이다. 물론 어떤 부분이 '여성들이 차별받는 부분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일정한 사례를 든다면, 질문한 남성도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결론은 한남들은 혜택받고 있어! 여혐민국이야.'라며, 남성을 까는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명제적 논리로서는 맞는 말이긴 하다. ' 대전제: 도덕적으로 모든 사람은 성별을 불문하고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소전제: 대한민국은 가부장제 사회고, 여성들이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결론: 대한민국은 여혐민국이며, 한남들은 남자라서 혜택받고 있다.' 그런데 소전제가 현실로 내려오게 되면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나는데, 결론은 더 황당하게도 '나'라는 존재를 까는 것이다. 그러니 '한남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내가? 남자라서 혜택받고 있다고? 오히려 손해 같은데? 군대 가야지, 결혼비용에 집장만해야지. 오히려 더 힘든거 같은데?'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차별의 문제는 개개인의 사례에서 시작되는 점이 많다. 개개인의 사례가 많을수록,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사례를 들고, 그에 얽혀 있는 개개인들을 설득하는 것이 공감대 형성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그것을 놔두고 모든 이를 싸잡아서, 비난하게 되면 일단 반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결론적으로 명제적 층위는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싸잡아서 말하게 되는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현실적 층위인) 개개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전제부분에 대해서 동의/비동의가 나눠지게 되고 논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대중들의 설득은 현실적 층위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은 '경험'이나 '역지사지'의 자세에서 나온다. 결국, 명제적 층위에서 '전제'에 해당되는 부분은 현실적 층위에서 일어난다는 소리다. 이 부분에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논리적 설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현실적 층위에서의 공감대가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명제적 층위에서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설득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 논리적으로 자신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에게는 결코 옳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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