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비경계
인류가 쌓아온 모든 것들 - 현 사회는 이성과 정교한 논리적 토대 위에 작동하고 있다. 지난한 역사 속에서의 문명들은 시대마다 혹은 저마다의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시대의 지식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치부하여, 경외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시대가 발전한다는 것은 기술과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지식의 층위가 넓어져 설명하지 못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성과 정교한 논리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경계선을 만듬으로써 분류-카테고리화하고, 구분하여 판단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경계선들은 분명히 사회가 잘 돌아가게 이끌어준다.
예를 들어, 음식은 그릇이라는 용기에 담아서 먹는다. 그런데 음식와 그릇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느 것을 먹고, 어느 것을 씻어야 하는 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 사회 체제는(모든 사회체제는) '어떤 것을 구분한다'는 것을 기본 시작으로 삼고 있다. 자국과 타국으로 나누고, 너와 나를 나누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나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떠한 경계선이든 간에 그것을 이유로) 늘 구분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계선으로 인해 우리는 사이에는 차이 혹은 차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성과 논리로만 점철된 사회가 어떠한 비극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성과 논리가 가지고 있는 결함에 대해 고찰할 수 밖에 없다. 그 결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성이다. 감성은 모든 출발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성과 논리라는 수단이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
(실질적으로 이성과 감성은 별개로 나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치판단 영역에서 합리적으로 근거를 들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그 주장은 일정 부분 주관적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결국 현실은 감성이라는 목표를 이성이라는 수단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잘 쌓아올리는가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의 증대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경계선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구분짓게 만드는 언어 자체에, 사회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고, 경계선 흐트러뜨린다.
사회 체제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여러 카테고리로 구분지음으로써 제도화, 법률화하고 그에 맞춰 국가의 의무를 행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그런 구분지음을 기본바탕으로 사회체제에 순응하고,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결국 사회와 인간은 경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경계를 깨부수는 비경계(경계흐리기)행위가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결국, 충돌과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이 경계선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모적인 싸움으로만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적질'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서 신난 아이와 같은 것이다. 아이처럼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이리저리 외치고 다니지만, 고민이나 대안은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에 따른 대안은 남이 알아서 만들어 줄테니까, 우리는 신나게 지적질만 하면 된다. (해결은 '당연히' 니 몫이지, 내 몫은 아니야.)
비경계를 추구하는 것은 비경계 그 자체이기에, 근본적으로 경계를 토대로 이루어진 사회를 무너뜨리고 난 이후의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대안을 제시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경계가 아닌 경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비경계는 경계의 폭력성과 이면을 폭로하는 역할만 할 수 있을 뿐, 결코 경계를 대체할 수 없고, 그 경계에 대해 좀 더 나은 듯한 경계가 이루어질 뿐이다. 단순히 비경계가 경계를 대체하는 순간, 그에 대한 대가는 약자의 희생뿐이다. 과연 약자와 강자를 경계짓는 사회가 무너졌을 때, 진정한 해방이 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곳도 지옥이고, 저곳도 지옥이면 한 방 지르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 늘 사회가 불안정하면 민란이 발생해왔다는 걸 우린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다.)
경계선은 분명 잔혹하고, 폭력적이지만, 일종의 방패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비경계가 주는 해방 - 경계의 폭력성으로부터 해방에 도취되어선 안 된다. 그 해방은 논리와 이성이 주는 폭력성과는 또 다른 비극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도 '자본주의'하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만 철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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