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1에 이어서 글을씁니다.)
Ⅲ. 기대
(인용)
45p
‥그러나 닉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연설하기 전 200년 동안 서방 국가들은 생활수준에서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가장 급진적인 변화를 목격했다.
- 이 챕터에서 알랭드 보통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미국이 얼마나 빠르게 생활수준이 진보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재는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편리한 제품들이 이 시기에 얼마나 빠른 단기간에 발명되고, 보편화되었는지 쭉 나열해서 소개한다. 이 챕터를 읽다보면, 이 시대 사람들이 받았을 변화 속도의 충격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드라이 클리이닝이라는 세탁법이 나왔고, 자고 일어났더니, 조명이 등장했고, 자고 일어났더니 전화기라는 제품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들은 얼마 안가서 보편화되었다. 왜 그 시대를 황금기라고 지칭하는지, 어째서 노년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충분히 짐작할만 하다.
- 그 당시에 인류는 매일매일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으며, 진보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진보는 어떠한가 싶다. 분명 지금의 진보 속도도 충분히 빠르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슬라이드 폰과 피쳐폰이 주된 휴대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젠 폴더블폰을 앞두고 있다. 이젠 tv도 벽걸이형을 넘어서서 롤러블 tv가 나오는 시대다. 그럼에도 현재 진보 상태는 답보상태다. 기술의 고도화, 전문화가 진행되면서부터 세상을 바꿀만한 혁신적인 제품의 등장은 매우 어렵게 됐다. AI 나 블록체인, 빅테이터, 사물인터넷, 핀테크 등 전문적인 기술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러한 기술들이 제품에 적용되어 일상생활에서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가 되기까지는 아직 요원해보인다. 매번 새로운 제품이라 출시되어도, 해당 제품들은 그저 곁가지와 같은 몇몇 기능들이 부가적으로 추가된 것일뿐, 본질적인 부분은 거의 변화가 없다. 예를 들자면, 초기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현재 등장한 스마트폰을 주었을 때의 충격은 마차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의 그 충격들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물질적 진보다. 굶주림이 일상다반사였던 중세를 벗어나 마치 옛 영주와도 같은 삶은 현대인들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가의 서비스, 고가제품들은 금새 중산층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가격까지 내려갔다.
(인용)
52p-57p
‥제2차 세계대전에 뒤이은 경제 팽창에서 서방, 특히 미국의 소비자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렸지만, 동시에 가장 괴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실제적 궁핌은 급격하게 줄었지만, 역설적으로 궁핌함과 굼핍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늘어났다. 지위에 대한 불안 - 자리, 성취, 수입을 놓고 걱정이 늘었다는 것이다.
- 불안에 관하여 매우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다. 이것에 대해 알래드 보통은 준거집단을 이용하여 어째서 불안감이 더 높아졌는지 설명한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준거집단)과의 조건과 자신들의 조건을 비교하여, 적절한 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재산을 가지고, 상/중/하로 나누고, 우리가 어느 집단에 포함되어 있는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포함된 집단이 보편적으로 어떠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판단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하나 더 보태보자면, 여기서의 혜택-욕망은 물질적 진보가 급격하게 이루어진만큼이나 급격하게 증가했다. 가령 '요즘 휴대폰 무제한 안쓰는 사람이 어딨어? 무제한 정도는 써야지. 내 수입이면 다들 차 1대씩은 몰고 다니던데, 나도 차 1대 정도는 몰고 다녀도 되겠지. 나 정도 버는 사람들은 얼마짜리 전세에 산다더라.'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그에 맞춰 소비를 하는 것이다. 최근에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듯이, 막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굳이 안 사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단지 내가 어느 계층에 속해 있다는 상징성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고, 또한 기업은 그러한 상징성을 만들어내는데 치중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부의 양극화는 소비적 측면에서 지위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을 촉진시킨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은 특정 제품의 소비가 해당 계층을 상징한다는 판단하에서 무리하게 특정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소비도 못할 정도면, 내가 경제적 지위로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대중적인 제품을 기피하고, 고유한, 자신만의 제품을 추구하는 성향이나 혹은 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이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계층에서의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을 구매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인용)
59p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 매우 좋은 지적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사례는 너무나도 흔해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린 빌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하루만에 10억을 벌었다고 해서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냥 먼 나라의 이야기인 셈이다. 반면에 자기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이 돈을 벌었다거나 행운이 찾아왔을 때 많은 이들이 시기하거나 질투를 한다. (위 59p에서 사용된 선망은 사전적 의미의 '부러워하여 바람'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개념인 envy의 개념으로서 대상의 파괴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선망을 생각한다면, 우린 빌게이츠도 충분히 존경의 대상,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최근에 핫이슈로 거론 되었던 아동 유튜버를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전문직도 벌기 힘든 수십억을, 자신보다 뭔가 더 특별나게 잘나보이는 것도 없어보이는 아동 유튜버가 한달만에 벌어들이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 질투, 시기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은 공부-전문직-능력-돈벌이로 이어진다는 굳은 믿음이 와장창 깨지는 사건이기도 했다.
(인용)
60p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는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 알랭드 보통은 이 말을 하면서 중세 시대의 신분제적 질서를 '당연시 여김'에 대해 지적한다. 신분제적 질서에 의해 불평등이란 것은 주어진 대로 타고나는 것이며, 자신과 동일한 계급에 처한 이들도 자신과 똑같이 매맞고, 똑같이 고통받는 모습을 통해 질서로서 순응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엔 고뇌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근대로 넘어오면 깨져버렸다. 우린 무한한 자유를 맛보았고, 그 대가로 불안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알랭드 보통 역시 이것에 대해 뒷부분에서 기술하고 있다. 정치적 사고가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서 신분에 맞춰서 질서를 정해준 것이 아니라, 신은 모든 개인에게 개인적 지배권을 주었고, 그렇기에 개인을 통치하는 통치자는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을 주어야만 통치할 정당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철학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알랭드 보통은 미국의 경우를 예로 많이 든다. 실제로 미국은 해방의 역사이며, 끊임없이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온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립전쟁 이후, 미국은 가문에 의해 결정되던 지위를 세대의 성취에 따라 지위가 부여되는 곳으로 변환되었고, 그것은 정치적으로 모두의 피선거권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려에서 조선시대,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한국은 한번도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쟁취한 적이 없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의 전환은 그저 위정자가 바뀌고 난 후에야 강제적으로 개방사회로 바뀌었던 것 뿐이며(물론 그 조차도 공식적으로는 양천제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상제를 따랐던 신분제적 사회에 가까웠던 것 뿐이지만서도), 대한민국은 식민지배를 받게 된 후에야 민주주의가 강제적으로 도입되었을 뿐이다. 후에 생겨날 독재정권에 대해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되찾는 등 활발한 운동이 일어나긴 했으나, 직접적인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 수립의 역사를 쓴 적은 없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의 정치는 매우 독특하다. 민주주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고, 이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주의 실현보다 대의민주주의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간다. 정치-권력자에게 '위임'했으니 '니가 어련히 알아서 다해라'는 마인드가 강하다. 그렇기에 경제적 불안, 시대적 불안은 많은 이들을 주체적 시민이 아닌 노예로 회귀시킨다. 권력자를 영웅으로서 둔갑시켜 멋대로 기대하고, 복종한다. 그래서 권력자-정치가는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한다. 영웅으로서 찬사를 받거나, 일도 제대로 못한 빌런으로 취급받거나.
-정치적 지위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고, 경제적 지위 역시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불안에 빠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돈을 신념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했다. 물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 지위가 높다는 것이고, 새롭게 권력이 개편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높은 것은 권력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은 때때로 정치가보다도 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권력가와 마찬가지로 성역의 대상인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다. 시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질수록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져 갈 뿐이다.
(인용)
66p
‥미국인들은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이런 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괴로워했다. (...) 불평등이 일반적인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등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바로 앞 60p에서 설명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이다. 준거집단에 의한 비교와 거기에서 느끼는 불안과 평온함에 대해서 알랭드 보통은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과거 중세시대의 신분제적 사회에서의 정신적 평온함과 신분제가 폐지되고 지위를 개인의 성취에 의해 이루어야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의 정신적 불안감을 토크빌의논문을 통해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용)
68p - 69p
‥민주주의느 기대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거해버렸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 평등하다고 믿었다. (...) 이에 대해 처음에는 특히 젊은 하인들 사이에 명랑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가장 재능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은 사람은 큰 부를 일구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는 상승에 실패한다. 토크빌은 그들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 민주주의 사회는 확실히 신분제적 질서에 의한 모든 장애물을 철거해버렸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 평등한 사회! 당신의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위가 향상될 수 있어요! 라는 장밋빛 희망을 심어주었다. 맞는 말이다. 당신에게 그만한 재능과 기회와 운과 노력이 있다면 말이다. 성공은 원래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고 대다수는 실패한다. 어차피 세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는 성공한 이들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신화를 증명해낸다.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뭐든지 될 수 있어요! 노력하세요! 라고.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실패자들은 조용히 무덤으로 들어갈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부터 이러하 기회의 파이는 분명히 더 커지게 되었으나, 어찌됐든 '성공'에 대한 메커니즘은 과거와 동일하다. 재능과 운과 노력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구되는 재능과 노력은 더 커졌고, 성공한 사람들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비교에 의한 자괴감, 우울감은 더 커져갔다. 정보 공유의 촉진은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를 촉진한다.
(인용)
70p - 71p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는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 "자존심 = 성공/잠재력" 이라는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 방정식을 통해서,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거나,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 2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포기하면 편해!' 라는 대사는 슬램덩크에서 나왔다. 그렇다.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찌보면 참담하다. 마음의 평안은 얻을지언정, 현실에서는 달라질 일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면서 괴로움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용)
72p-73p
‥기대의 좌절에 따르는 위험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지상에서의 일이 영원한 삶의 짧은 서곡에 불과하다는 믿음은 다른 이들의 성공이 순간적 현상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질투심을 다독일 것이다. 그러나 이젠 성공에 대한 기회는 1번 뿐이고, 그것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이뤄야만 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 지상에서의 성취는 자신의 모든 총합이 된다.
- 알랭드 보통은 이후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수많은 자서전과 자기계발서, 자수성가한 사람의 법칙에 대해서 열거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끊임없이 공평한 기회와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정확히 대한민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인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은 두 가지 상황이 혼재되어 있다. '수저론'이 부상하면서부터 N포 세대가 등장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력', '열정'을 강조한다. 정신론을 강조하면서, 정말 정말 미친듯이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면서, 실패에 대한 원인을 본인 노력 부족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생각들을 옹호하는 이들은 세대적으로, 가치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데, 그 결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해결책의 추진력 또한 약하다.
(인용)
78p
‥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의 발달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그들과 연관맺을 기회는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미디어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진 광고를 통해 청중의 마음에 갈망을 심었다.
- 자본주의의 꽃은 광고라고 말한다. 그것은 욕망을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상징을 만들어내고, 그 상징을 갖게 만들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시킨다. 이러한 상징은 찾아보기 쉽다.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xx동이라든지, 강남 부자들이 산다는 아파트라든지, 잇템, 머스트 헤브 템, 인싸템 등으로 트렌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든지 등등 많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가져야만 한다는 부추김 속에서 압박감을 받고, 또한 그것들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공에 대해 기대한다.
- 알랭드 보통은 그 후에 장-자크 루소를 통해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비참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정확히 '포기하면 편해'와 같은 말과 유사하지만,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추김에 의한 기대인가, 아니면 내가 진정 원한 기대인가 구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세대를 걸쳐서 학습된다. '경제적 지위가 떨어지면 넌 실패할거야. 아무도 너에게 관심 갖지 않을거야.' 와 같은 두려움이라든지, '넌 해야만 한다. 성공해야만 해.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교를 갈 것이고, 대학교 잘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거다.'와 같은 기대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과 기대감을 경쟁-비교를 통해 촉진시킨다.
Ⅳ.능력주의
- 앞선 챕터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번 챕터는 작가의 통찰력이 더욱 빛나는 챕터였다. 그는 중세시대에서부터 최근 근대까지의 옛 이야기 세 가지와 근대화 이후에 생겨나게 된 세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지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인용)
87p - 91p
‥첫 번째 이야기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두 번째 이야기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세 번째 이야기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 이 이야기를 통해 알랭드 보통은 중세시대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야기 한다. 현실적으로는 성직자와 귀족만이 귀한 대접을 받고, 농민들이 푸대접을 받았다 할 지라도,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들, 이론들의 저변엔 각자만의 역할을 존중하였다는 것이다. 머리를 성직자에 비교하고, 발을 농민에 비유했을지라도, 머리는 발이 없으면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동양의 유교사상인 군군신신부부자자와도 궤를 같이 한다. 신분적 차이가 있고 그것은 신이 정해주신 절대적인 것일지언정 각자만의 고유한 역할이 있어서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제적 지위가 낮은 빈자(貧者) 역시도 존중받아야 하며, 돈에 있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들의 가난한 것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말한다. 이러한 사고관은 중세의 내세관과 결합하여 수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힘든 사람일수록 신을 찾았으며, 부자가 천국을 통과하기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함으로써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 하지만 작가에게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설명은 신분제적 질서에 기반한 설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신분제적 질서 = 경제적 지위가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중세시대의 사상이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지위를 기반으로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발을 농민에 비유했지, 빈자에 비유한 것은 아니며, '농민'은 존중하자고 했지, '빈자' 그 자체를 존중하자고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첫 번째 이야기를 제외한 두, 세 번째 이야기는 확실히 성경에서도 등장하는 바로써 나름 타당한 일리가 있다.
- 뒤에서도 후술할 것이고, 책에서도 다루게 될 것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는 빈자는 죄악이다. 왜냐면 그들은 소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서비스, 내가 만드는 상품들을 소비할 여력이 없는 이들을 배려해야 줘야 할 이유가 어디있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현대 사회와 비교하게 된다.
- 작가는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생산물의 판매 금액보다 더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해서 그 차액을 이윤으로 가져가는, 노동자의 노력을 착취하는 인물로 묘사했으며, 이러한 차액에 대해 모험이나 경영에 대한 대가로 애써 표현하지만 이는 도둑질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은 경제학적으로 '서비스', '무형'의 자산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형의 자산들만 자산으로 고집한다면 이런 사고 방식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필자 역시도 무형의 자산을 인정하는 바인데, 다만 그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그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며, 서로 간에 인정하는 바가 달라 늘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작가는 어찌됐든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위 세 가지 이야기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용)
96p -118p
‥첫 번째 이야기-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있다.
‥두 번째 이야기-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세 번째 이야기-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 근대에 와서 등장한 위 세 가지 이야기는 정확히 옛 이야기의 내용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위 세 가지 이야기가 승리했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옛 이야기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서로 논리적으로 연관이 없기에 맞는 말이라 인정할 뿐이다. 대신에 바로 위 세 가지 이야기를 상당 부분 믿는 사람들은 많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현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옛 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를 지지한다면, 부정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이 옛 이야기의 두 번째를 믿으면서도 현대 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지위의 다양화 때문에 생겨난 사고다. 특정한 직업-지위들은 명예나 도덕심을 요구하고, 그렇기에 사회에서 존경받는다.
- 이러한 근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점차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전환으로 인해 괴로움에 빠졌다고 말한다. 위 세 가지 이야기는 전부 '성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소비적 측면에서 말할 것도 없이 맞다. 부자들(인간들)의 탐욕이 자연스레 사회적 후생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경제학에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전제다. 두 번째 이야기로서 혈연으로 신분이 결정되어지던 시대에는 당연히 지위와 도덕성을 불일치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직업들-지위는 이제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가진 이들만이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능력이 없으면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능력주의 사회에서 지위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는 말이 통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빈자에 대한 인식도 바꿔놓았다. 신분의 벽으로 인해 박탈당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남아있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과 매체들은 '당신이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불어넣었고, 이제 가난한 자들은 열등해서, 노력부족으로 실패한 것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 자본주의 하에서 소비는 미덕이고, 허영심과 욕망, 탐욕은 경제의 원동력으로 포장된다. 물론 그것들이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불러 일으키고, 그로 인해 물질적 진보-생활수준 향상을 견인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소비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사업가 포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렸고, 그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게끔 도왔다. 노동자가 없으면 경영가, 기업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기업가나 경영가가 없으면 노동자들은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중세시대에 신분을 신체에 비유했듯이, 기업가나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와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 머리에 해당하는 기업가, 경영가는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있다. 팔다리는 기계로 대체되었다. 이제 굳이 음식을 팔다리로 보낼 필요가 없다. 빈자가 되어가는 노동자들은 소비조차 하지 못하는 이제 무쓸모한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용)
119p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 읽으면서 굉장히 가슴 아픈 말이었다. 과거에 필자가 괴로워하며 썼던 글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필자는 예전에 '성공한 사람이 쉬는 것은 잠시 쉬는 것이지만, 실패자가 쉬는 것은 무능력의 근거가 된다고, 끝없이 노력해야만 하고, 죽을 지경이 되는 정도가 아니면 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현대에 들어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바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심도있게 바라볼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타인을 간단하게 판별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능력-특히 돈버는 능력이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기회, 노력, 운, 재능, 상황, 제도, 인맥 등등 무수히 많은 원인들이 작용할테지만, 이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치부해버린다. '능력부족'이다. '제도가 문제였다고? 그럼 니가 대비를 잘했어야지. 기회가 없었다고? 기회를 니가 만들었어야지. 아팠다고? 건강관리를 평소에 잘했어야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다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잘만 성공해. 니가 나약해서 그런거야.' 와 같은 이야기로 모든 것은 자신의 능력부족이란 한 단어로 마무리해버린다. 만능 능력주의는 모든 원인을 개인 내부에서 찾으며,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띤다.
Ⅴ.불확실성
- 이제 작가는 불안의 요소 중 하나로 불확실성을 내놓는다. 앞서서 불안요소로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등을 쓰긴 했지만, 정확히 말해서 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확실성이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작가가 계속 말했던 신분제적 질서의 붕괴로 인한 자유의 대가인 것이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 지위가 위아래로 변동될 일이 없으니,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겠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정해진 길이 있어서 그 길만 따라가면 된다는 안정감이 있다. (물론 사회적인 배경, 환경 제약은 여전히 남아있지만서도) 적어도 제도적이든, 이론적이든 지위의 제약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모든 이들이 출발선에 서서 성취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성취를 성공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 작가는 이러한 성취에 필요한 다섯가지 요인(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운에 대해선 작가는 현대사회에 와서 합리적인 통제에 의해, 불운이 실패의 원인으로서 그럴듯한 이유가 되질 못한다는 것은 우리 삶을 괴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운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으며, 운을 바라는 것은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없이 자기노력을 강조하는데, 생각보다 운이 개입하는 것은 강력하다. 어디까지 운으로 볼 것인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1번과 2번, 5번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불확실성에 관여한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3번과 4번니 불확실성의 요인이 되는지 의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고용주와 다수와 노동자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계급적 구조를 지닌 다수는 불안요소다. 노동자와 고용주는 상호간의 역할 분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연봉, 자원결정권-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불안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어야 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이익으로서 증명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고통지서가 날아올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고용주를 잘 만나야만 한다. 단순히 고용주가 노동자를 대접해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추세를 잘 읽어내서 이윤을 계속 낼 수 있도록 계획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원들이 우수하더라도, 선장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배는 침몰하고 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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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확실성을 끝으로 작가는 불안의 원인들을 총제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의 장점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이라는 중요한 심리 현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거시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술술 읽히도록 썼다는 점이다. 또한 복잡한 이해력이나 사고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분석 끝에 작가는 인문학적인 해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 해법은 작가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심리를 분석해보고, 독자 스스로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법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을 예정이다.
심리학, 심리철학, 인문학 등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에게 매우 추천.
현대를 살아가며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도 권해볼만한 책으로 추천.
불안 심리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관심있는 사람에게도 추천
인문학에 대한 입문용 책으로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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