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독서

리뷰1 - 불안, 알랭드 보통 지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8. 1. 06:08




오늘 인생 책이라고 꼽을 만한 책을 하나 봤다.
지금부터 제가 쓸 이 글은 분명히 이 책에 대한 리뷰겠지만, 떠오르는 단상들이 너무 많아서, 리뷰가 아닌 여러 단상들의 집합글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왜 지금에서야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던 만큼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서문은 단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로 시작한다.
어떤 현상이나 사회를 설명할 때, 사전에 핵심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학술적인 의미를 떠나서 독자들이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나 이러한 핵심 단어들이 사회적인 맥락이나 사회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면 더더욱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지위(status)에 대한 정의, 그리고 지위로 인한 불안(status anxiety)의 정의와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 후, 간단한 명제들(sentences)을 제시하고 있다. 


(인용)

7p 지위

‥지위는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다.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 집단은 사회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 서양에서는 1776년 이후 경제적 성취와 관련하여 지위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 배려,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 등이 포함된다.


(인용)

8p - 9p 지위로 인한 불안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특유의 어두운 티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릴 때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애정결핍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이러한 상처들은 결국 그 사람을 자존감이 떨어진 어른으로 만든다. 그래서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늘 불안과 자기 파괴적인 정서적 학대에 시달린다.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극한의 경쟁상황으로 내몰린 한국사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대다수가 지위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러한 지위 불안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하게 만들었다. 대기업, 전문직, 공기업과 같은 것들은 극소수인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극소수의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대한미국에선 현 지위를 유지하거나 앞으로 상위로 올라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업들은 현 경제적 지위를 간당간단하게 유지하고 있을뿐, 가난한 노년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을 상당부분 안고 있다.

이러한 지위 불안들은 수 많은 것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인간 관계 포기와 같이 현 상황에서의 비용을 줄임으로써 가난한 노년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보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원인부분과 해법 부분으로 나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원인에 대한 부분만을 짚고 넘어갈 예정이다.


원인

Ⅰ.사랑결핍


(인용)

15p - 18p

‥어떤 동기 때문에 높은 지위를 구하려고 달려드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갈망이 주로 손에 꼽힌다. 그러나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정체성을 가진 누구 못지 않은 존재 권리를 가진 개인이지만, 사회적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이름 있는 사람(유명인)', 그 반대 경우는 '이름 없는 사람(무명인)' 식으로 나누어 지위에 따른 대접의 질적 차이를 전달한다.

‥낮은 지위의 사람은 정체성은 무시당하고, 개성은 짓밞히며,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는다. 낮은 지위는 물질적인 맥락을 넘어 자존심과 연관된 문제들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부자들(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은 돈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관심종자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였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확실히, 정재계에 있는 사람들은 유명인으로서 언론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네.' 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든 생각은 수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엔 정재계에 진입하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쏟았다면, 이젠 인플루언서, 연예인, BJ 등등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정재계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굳이 그쪽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심이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관심-영향력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 책에서의 지적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과거 세대를 보자면,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정치나 권력 쪽으로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인용)

21p

‥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 이러한 사고(思考)는 필자가 전부터 강조하던 스스로에 대한 인정, 타인에 대한 시선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필자는 늘 타인에 대한 시선을 신경썼고, 그로 인해 괴로워했으며, 스스로의 인정이나 스스로가 인정하는 발전,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다. 타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해도 그것은 이미 시선을 의식화 하고 있는 단계이며, 여전히 괴롭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필자는 시선을 무시하는 척 하는 것을 그만뒀다. 내가 별볼일 없다는 것을 분명히 직시하되, 그 감정의 구렁텅이에만 치중하지 않으려고 했다. 별볼일 있는 사람만이 타자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별볼일 없는 것에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이러한 다짐을 갉아먹는 피해의식, 자존감 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스로의 성취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타자의 인정에 대한 욕구나 자존감이 부족, 관심종자라는 것이 나쁜 것인가. 그것은 주체적이지 못한 것이고, 그렇기에 나쁜 것인가. 주체적으로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본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타자의 시선에만 매몰되어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를 우린 무척 많이 봐왔다. 쇼윈도우 부부라든지, 이 사람의 지적과 저 사람의 지적에 맞추려다가 오히려 이도저도 안되는 경우라든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적인 삶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 부분의 주체성과 일정 부분의 사회성 모두를 고려하여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에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린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Ⅱ.속물근성


(인용)

29p-31p

‥속물이란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하나의 가치 적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 또는 무엇을 존중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지어 의미를 좁혀보면, 그 특징은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뀐다.


- 이러한 속물근성의 정의에 따르면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지인에 한해서, 친밀한 사람에 한해서 그 사람을 판단할 때 지위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제 3자를 마주하게 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므로, 외적인 요인-사회적 지위도 중요 고려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어디 대학에 저명한 교수라고 소개 받으면, 그 분야에서 학식이 매우 뛰어나고, 나름 격식이 있는 문화인으로 판단하지, 이중인격자에 가족을 학대하는 알콜중독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과잉 추측, 망상에 가깝다. 또한 전문직과 같이 얻기 힘든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에 대해선 그만큼의 노력이나 재능, 능력에 대해 대단하다고 여기지 별볼일 없고 하찮다고 여기는 이는 거의 없다.


‥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좌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매우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권력관계-위계질서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갑과 을로서, 법이나 권력, 경제력 등 다양한 것들로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통제 따르지 않으면 어떤 부분에서 손해가 발생하게 만들거나, 통제에 잘 따랐을 때 주는 보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손해나 보상이 전혀 무관한 것일면 결코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줄테니 내 발을 씻기라고 한들, 그 돈 많은 사람이 발을 씻기겠는가.


‥멍청한 아첨꾼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권력이나 명성 때문에 당신을 사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밑바닥에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아첨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번지르르한 표면 밑에서 변덕스러움을 감지하고, 속물 무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 이 역시 매무 날카로운 분석이다. 아첨꾼의 행동에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를 찾아낸 것은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를 사회적인 지위의 불안과 연결지어 두려움 때문이라 원인을 찾아는 것 역시도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인용)

33p-36p

‥속물은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분위기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해버리는데, 그 수준을 위험할 정도다.


- 그래서 많은 연예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관심이다. 과거에 유명했던 연예인들이 은퇴 후에 우울증에 시달린다던가, 자살했다는 기사는 생각보다 많다. 자신들이 영향력이 TV를 통해 유행하고, 이러한 영향력을 선망하고, 추종하던 이들이 유행이 시들어버리자 떠나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 지위를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분명한 기쁨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정이 어느 때고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연예인들에게 큰 압박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성공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다. 직장 내에서 지위가 높았던 이들, 연예인들, 정치가들, 인풀루언서들 등 지위로 인해 관심, 존경 등을 받아봤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이다.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나이든 세대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고정 관념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준다.


- 그렇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특히나 사농공상 따위의 신분제적 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더욱 확실시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직업적 지위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뒷바라지를 해서 본인과 비슷한 직업적 지위를 얻게끔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를 얻어야 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인맥을 만들어 카르텔을 구성하여,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인적 카르텔을 형성해준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현 부모님 세대는 이러한 불안감, 두려움이 더욱 증폭됐을 것이다. 현 20-30세대들은 학벌 열풍을 가장 직격으로 맞은 세대다. 취업을 불확실성이 커져가던 시기고, 그렇기에 자격증, 학벌, 스펙 열풍을 가장 먼저 겪게 된 세대이기도 하다. 그것의 원인은 단지 '두려움' 그 하나다.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와 사귈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사귈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란다!"

두려움에서 시작된 속물근성의 순환은 중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다.


- 바로 앞에 필자가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이후 아무것도 결정되지 못한 미래를, 두려움을 맞딱드리게 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황금시기, 한강의 기적, 문화의 부흥들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 이러한 지옥을 목격한 뒤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카르텔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속물근성의 병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애초에 이러한 인맥, 카르텔, 속물근성에 분개하던 이들도 '살아가다 보니' 그것이 답이라는, 수긍하게 된다. 그리고 교육-전문직-돈 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도 되는 듯, 교육을 위해선 돈을 아까지 않는다.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줫으니, 좋은 성적,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통해 높은 지위로 올라가도록 강요한다. 그들만의 리그, 카르텔에 들어가이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강남 8학군'이 뜬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용)

38p

사치스러운 장식장을 갖추는 것이 심리적으로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보람있는 일이라고 느끼도록 상황을 조성한 것은 그 사회다. 그렇기에 사치스러운 장식장은 상징적인 물건으로서 이를 갖춘 이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인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인 형벌이다.


-작가의 통찰력이 또 한번 빛나는 부분이다. 어느 누가 사치스러웠던 시대를 가리켜 감정적 상처의 기록이라 생각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욕스러움, 어리석음, 실용적이지 못함 등으로 평가할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사치스러운 시대를 통해 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형벌을 이끌어낸다. 


(글이 길어져 .기대 부터는 리뷰2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