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길을 한 권의 소설로 엮어낸다면 어떨까.
나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배제한 채, 내가 살아온 날들을 객관적으로, 보이는대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A4용지로 10 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고작 10 페이지로 정리될 인생이라니, 이제껏 뭐하고 살았는지 서글픈 인생이다.
사실 원한다면 더 짧게도 쓸 수 있는 인생이다.
그냥..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 남들과 똑같이. 초등학생 때, 배우던 학습지를 풀기 싫어서 맨날 검사 하루 전날에 몰아서 풀었고, 윤선생 영어는 검사하는 당일날 새벽까지 녹음하곤 했다. 억지로 가게 된 피아노 학원은 기어코 고집부려서 때려쳤으며, 남들 따라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다 워드프로세서를 땄다. 중학교 때는 선행학습이라고 영어와 수학만 과외를 받았지만,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 땐 매일 야자하다가 그렇게 대학교를 갔다. 그리고 군대, 동아리활동, 졸업.
그게 다다.
그 사이 사이에 풀어낼 썰들이야 좀 있지만서도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20년 내내 공부하고, 대학와서 생각없이 반쯤 놀고, 반쯤 공부하다가, 취업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인생. 인생이 뭐 별건가. 그냥 대한민국의 흔한 학생.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 같은 인생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3 때는 참으로 꿈이 많았다.
워킹홀리데이도 가보고, 어디어디 외국여행도 가보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뭔가 자유를 실컷 만끽하며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보고 싶은 외국도 하나씩 적어놓고, 버킷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루지 못했고, 생각보다 해외여행가는게 굉장히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방학땐 집안일 도우면서 대충 보내기 일쑤였으니, 참으로 시간을 아깝게 날린 셈이다. 남는 돈이 없을지언정 그 때 저축했던 돈으로 해외 여행이나 한번 다녀볼걸..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버킷리스트에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쉬워 했던 것을 이뤄낸 적은 있다.
대학생 때는 소개팅이라는 단어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가뭄에 콩 나듯 온 연락을 모조리 거절했었다. 그 소개팅들은 앞으로는 하고 싶어도, 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았어야 했다. 무슨 바람이었는지 굳게 결심하고 졸업 전에 몇 번 소개팅을 해봤다. 에프터는 다 성공했었으니 최소한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소개팅은 나랑 안 맞다는걸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존칭을 쓰는 내 모습이 마치 부모님들 세대가 선을 보러 나온 듯한 느낌이었달까. 주선자 덕분인지, 아니면 상대분들의 성격이 다들 좋으셔서 그런지 에프터를 잘 받아 주셨다. 보통 3~4번쯤 만날 때 사귈지 말지 고백한다고 하는데, 막상 나는 그때까지도 뭔가 거리감이 느껴져서 고백하는 것을 주저하게 됐던 것이다. 물론 그 고백이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직 상대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결정을 지어야 한다는게 나에겐 부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 성향을 깨달아 간 것이다.
여튼 간에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내 책상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언젠가는 이루리라는 생각이지만, 현실은 점점 더 멀어지는듯 하다.
내 인생에 대해 하고픈 말은 많지만, 그건 주인공 시점에서의 생각일 뿐이고,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써내려가자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와 같은 철수의 일대기와 같은 밋밋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단지 한 가지 스스로를 위로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비슷할 거라는 추측이며, 안타까운 것은 나 자신이 이제 그 평범함에서조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바로 낙하다. '인생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설이 아니잖아!'하고 스스로 항변해보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한 권의 소설로 엮어본다면? 하고 스스로 가정했으니 판단해보는 것이다.
비추천의 소설, 재미없는 소설.
읽다가 너무 졸려서 하차할 소설, 내용이 빈약하게 짝이 없는 소설.
그리고 중단되어 버릴 소설.
......난 내 소설을 이대로 중단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나 자신의 소설의 끝을 보려 한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소설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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