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티스토리를 켭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PC로 아무 글이나 쓰고 싶어 졌습니다.
휴대폰으로 작성하는 글과는 달리 PC로 작성하는 글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간편하지만, 휴대폰으로 글을 쓰다 보면 침대 바닥에 늘어지는 것과는 다르게 PC로 작성하는 것은 글을 쓰는 동안 정자세로 앉아있는 것을 요구합니다. 분명 그것은 불편하지만, 확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덧붙여서 PC로 작성하며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역시 휴대폰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글이 쉬지도 않고 계속 쓰여야 키보드 소리도 즐거울 텐데, 그러지 못하는 저는 키보드 소리가 뚝뚝 끊기곤 합니다.
백색소음이라고도 하지요. 타자기 ASMR이라는 유튜브 영상이 있을 정도로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는 나름대로 집중력이나 고양감을 살짝 일으키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의 키보드 소리는 타자기 소리와는 다르네요. 찾아보니 저소음 적축 키보드라고 합니다. 글은 꾸준히 써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키보드 소리가 좋아졌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오늘 유달리 그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여하튼 PC로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신나게 키보드 소리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날씨가 구름이 끼었다는 것이네요.
정말 아무 글이나 쓰고 싶었기에 다소 상관없는 주제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중구난방식으로 글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눈이 초롱초롱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언가 의욕적으로 보이고, 활력이 넘쳐 보이지요. 왠지 그런 사람들 곁에 있으면 나 자신도 뭔가 활기찬 기운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매력적으로 보여요. 자신감 있고, 활기차고, 주변 사람에게도 에너지를 줄 것 같은 그런 에너지 드링크 같은 사람 말이지요. 내향적인 저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지만, 가끔씩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에너지 드링크가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에너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지요.
저는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는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어요.
고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궁금해서 친한 여자 친구에게 물어 봤지요. 그 친구는 제가 짝사랑 하던 그 친구와 매우 친했거든요. 물어보는 순간, 그 친구가 환하게 웃으면서 '너, 걔 좋아했구나?'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땐 어리숙해서 아닌 척 슬쩍 물어보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그냥 직접적으로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나, 걔 좋아한다!'라고 자백하듯이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그 친구가 저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너, 걔 이야기만 하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거 알아?' 라고. '사람 눈이 이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눈은 거짓말 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의 눈은 흐리멍텅해진 것 같습니다. 흐리멍텅하진 않은데, 그냥 흔하디 흔한 평범한 눈이겠지요. 활기차지도 않고, 그렇다고 흐리멍텅하지도 않은, 약간은 피곤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그저 그런 눈. 열정은 사라지고 게으름이 붙어가는, 활동이 둔화되어 버린 그런 사람이지요. 글을 쓰다 보니 자괴감이 살짝 밀려옵니다.
몸이 피곤해도 정신은 오히려 더 멀쩡하게 깨어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을 거에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고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 피곤하더라도, 아둥바둥 정신을 뚜렷하게 붙잡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적이 몇 번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땐 바빠서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피곤하면 정신도 피곤해지는 걸 느낍니다.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육체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는 순간이 온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부턴 나태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나태는 부족할 때가 아니라 넘칠 때 오는 것이겠지요. 육체가 편해지고, 육체적 안락함을 추구하고, 편해지는 삶을 따라 육체는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육체니, 정신이니, 이런 이야기가 왠지 일부러 불편함을 참고 견뎌내고 정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것처럼 보여 구닥다리 정신 강조론 같아 보입니다만 그런 의미로 쓴 건 아닙니다. 그저 글을 쓰다보니 지난날의 내 삶 속에의 나태와 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끝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육체를 지닌 우리는 분명 육체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린 더 힘들게 발버둥 쳐야겠지요. 낡아가는 육체를 지니고서, 정신이 육체에 매어있지 못하도록 육체를 관리하고,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결론은 눈이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꼭 사랑 때문에 눈이 빛나는 건 아니고, 그냥 활기찬 눈을 지니고 싶어요. 의식적으로라도 눈빛을 빛내고, 열정적으로 살려고 자꾸 마음을 다잡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아, 귀찮다, 하기 싫은데..'라는 마음가짐은 의식적으로라도 안 하고, '눈을 빛내자. 열정적으로 살자. 에너지 드링크가 되자.'라고 자꾸 생각합니다. 힘든 것에 생각을 집중하면 분명 더 괴로워지는 것 같아요. 전에 말했듯이 부정적 감정들을 자꾸만 탐닉하는 것이지요. 심적으로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힘든 것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괴로움에 집중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요.
우중충했던 날씨와는 달리 지금은 햇빛도 나고 있어요.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삶이라는 건 그냥 태어나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기에 어떤 목표의식이 없으면 방향성을 잃고 이리저리 부표처럼 해매게 됩니다. 삶이라는 것이 꼭 방향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해맨다는 것은 생각보다 괴롭습니다. 무언가 산다는 느낌없이 떠다니는 느낌으로 되는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찌어찌 살게 됩니다. 그리고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되지요. 그러다 어느 한 존재에게 매달리게 됩니다. 그 존재는 신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외부의 한 존재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활기찬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습니다. 누군가를 찾아해매지 않고, 활기찬 에너지를 받기 위해 매력적인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가 에너지 드링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되뇌이진 않지만, 그래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분명 과거의 관계들이 떠오른다는 것은, 단순한 추억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자신의 상황이 아쉬운 것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문득 떠오른 과거와 지금의 생각들이 겹쳐져서 아무 글이나 쓰고 싶었습니다. 딱히 큰 목적을 두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들을 그냥 주절주절 대고 싶었습니다. 연구자료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모든 글들이 생각을 밝힌다는 점은 공통입니다만.
왜 문득 떠올랐을까. 그리고 과거의 나는 분명 누군가를 목표로 삼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도 했던 것 같은데. 누군가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어쩌면 신에게 매달리는 종교처럼 외부의 한 존재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겠다는 건 아닌가. 꼭 어떤 존재를 목표로 삼아야만 하는가. 그 때 되고자 했던 사람이 무엇이었나. 스스로가 되고자하는 인간관을 어떤 사람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얽혀서 지금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이번 만큼은 잊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싶습니다.
단 한 단어만 내 마음 속에 남겨두며 글을 마칩니다.
p.s
흐리멍덩 하다가 표준어입니다.
흐리멍텅은 북한어이지만, 저 이 어감이 왠지 좋아서 그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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