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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대한 정의, 문제점. 그리고 혐오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가?

어둠속검은고양이 2016. 7. 21. 19:49
인터넷에서는 어느샌가 여성혐오라는 발언이 많아졌다.
또한 여혐사건이라 불리우는 사건도 많아졌다.

그래서 사건을 두고 항상 여혐이냐 아니냐 가지고 논쟁이 일어났고, 정작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예방책은 어때야 하는지 중요한 논쟁은 뒤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여혐사건인지 아닌지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대처 방안에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여혐사건이냐 아니냐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해서 그렇다고 보여진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물어봐도 100이면 100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다만, 어렴풋이 속뜻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면, 일반인(?)이라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페미니스트들과는 분명히 다를것이다.

아마도, 여성혐오 = 여성을 싫어함. 역겨워함. 부정적보고 배척함, 정도일 것이다.
허나, 페미니스트들의 여성혐오는 좀 더 넓은 개념의 혐오이다.
무조건 배척, 싫어하는 것도 여성 혐오지만,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은연중에 어떤 대상화나 도구화로 보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여성을 혐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 개념에 대한 정의도 어렴풋한 속뜻을 필자의 언어로 풀어낸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여성혐오를, 여성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남성과 정확히 동등하게 보지 못하고, 사회적, 개인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무의식 혹은 은연중에 남성보다 못한 존재, 열등한 존재,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가는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면 대한민국은 가부장제를 기반으로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는 대한민국의 징병제에 의해 여전히 공고하게 지탱되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상명하복의 군대문화를 경험해온 남성들은 회사에서, 사회에서 군대식 문화를 재생산해내고, 이러한 문화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미명 아래에, 여성 취업의 방해물로 작동하고 있다. 여성보다 군필자를 선호하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군필자 선호는 여성뿐만 아니라, 군대를 가지 못한 남성에게도 불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전 인류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성혐오도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는 혐오를 인간을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고, 어떤 대상화나 도구화로 보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 상품화가 빈번히 일어난다. 그리고 성 상품화는 인간 본연의 성욕과 맞닿아있다. 남자들이 완전히 해탈하여, 부처가 되지 않는 이상, 여성을 어느 정도 성적 대상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성간의 성적인 사랑에 있어서도, 여전히 서로에 대해 성적 대상화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여성 역시도, 남성을 성적 대상화로 전혀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성에 대해 혐오(여기서 혐오는 좁은 의미로서, 증오에 가깝다.)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굳이 성적 대상화 뿐만 아니라, 사람을 도구적으로 보고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아주 가깝게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부속품으로 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혐오를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문제점이 하나 생긴다.
혐오가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완전한 혐오의 타파를 원한다면, 우리 각자는 온 몸을 히잡으로 두르고, 누구와도 소통하지도 않은 채, 외출도 금지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창작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 작품에 나오는 갈등, 사건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데, 그 부분 부분에 드러나는 혐오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또한 사람 각자마다의 시선이 있는데, 그들의 관점을 어떻게 다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에게는 혐오처럼 보이지 않는데, 누구에는 혐오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평등은 이상으로서만 존재하듯, 혐오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 역시도 이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뭐, 그렇다고 혐오를 내버려둬선 안된다. 혐오는 점차 줄이도록 영원히 지속되어야할 과제다. 마치 불평등한 세상을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려는 것과 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