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토론에 필요한 용어 개념의 명확성, 그리고 용어의 입증 책임

어둠속검은고양이 2017. 1. 8. 16:38

엄밀히 말해서, 어떤 용어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정의내려져 있지 않다.


허나, 우리가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 용어의 정의가 어렴풋하게나마 서로가 용인하는 부분이 곂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커피를 탈 때는, 설탕 한 스푼이 좋아." 라고 했을 때 여기서 커피, 탈 때, 설탕, 한 스푼, 좋아 라는 각각의 다섯 개 단어의 개념이,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이 생각하는 개념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전에서 찾아서


1. 커피나무의 열매를 볶아서 간 가루카페인을 함유하고 있으며독특한 향기가 있어의 원료로 널리 애용되고과자나 음료수의 복합 원료로도 많이 쓴다.


2. 커피가루를 끓인 물에 타서 마시는 차. 커피차.   참고 : 네이버 사전


일일이 읽고 서로가 말한 것이 1번인지 2번인지, 범위는 어디까지를 가리키는 것인지 의논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커피'라는 단어를 개괄적으로 아메리카노를 상상하고 말을 꺼냈고, 상대방 역시도 커피가루를 탄 차, 아메리카노와 같은 그런 종류의 커피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탈 때'라는 말은 커피를 내리는 그 순간, 필자가 생각한 경우는 커피가루를 담은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이고, 상대방은 샷을 내리는 상황일 수도 있고, 커피가루를 컵에 담는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커피를 탈 때는' 이라는 말은 상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고, 필자가 말하는 바와 상대방이 이해하는 바가 일정부분 겹치기 때문에 무리없이 상대방이 이해하는 것이다.


'한 스푼'이라는 말도 티 스푼일 수도 있고, 밥숟가락일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에서 커피를 마실 때 쓰는 것이 티스푼이고,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티스푼의 사이즈가 조금씩 차이가 날 지언정, '티스푼'이라는 범위에 한정되어, 필자가 말하는 바가 상대방이 이해하는 바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서로 살아온 사회가 다르다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대화라는 것은 나와 상대방이 속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들, 경험들, 사회 문화적인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다.


허나, 토론을 할 때는 주의해야만 한다.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완전히 명확하게 용어를 정의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최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 즉, 서로가 이해하는 부분이 곂침이 있어, 생각이 공유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정의를 내려줘야 한다.


이는 새로운 학술적 용어를 끌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상대방과 토론하고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 생각마저도,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그런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마이크로토크컨셉셔니즘'과 같은 상황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대방은 '마이크로토크컨셉셔니즘'이 뭐야??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그럼 공부좀 하십시오.^^ 그것도 모르십니까? 공부를 안했으니 본인이 자각도 못하고, 마이크로토크컨셉셔니즘 상태인거지요.' 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그럼 토론이 되는가? 애초에 토론을 함에 있어서 새로운 용어를 끌어왔으면, 그 용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하여 상대방이 이 개념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대방 보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이 용어에 대한 개념 설명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꼴이다.


본인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용어의 사용은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토론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설득'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왜 몰라?' 하는 것은 설득 실패, 논리적 실패를 가져온다. 입증 책임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자에게 있다.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언어의 외연을 확장하고, 해당 언어의 외연 확장을 왜 상대방이 모르냐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토론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왜 대화하는가?

내가 원하는 말만 할거면, 왜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가? 혼자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토론, 대화는 상대방이 필요한 것이고, 그 상대방과의 조율을 통해 설득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 둘 모여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p.s 추가적으로 하나의 용어를 생성하여 사용할 때는 다른 용어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뜻이 담겨야 한다. (동의어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을 차지하고서라도) 아니면, '상대방이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A라는 단어는 A라는 알파벳을 가리키는 단어고, B는 B라는 알파벳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래서 A다, B다 말하면 상대방도 A가 뭐고, B가 뭐라고 따로따로 구분해서 이해를 한다. 헌데 @라는 단어가 A라는 알파벳에도 적용되고, B라는 알파벳에도 적용된다고 해보자. 그럼 상대방은 @라는 용어가 A와 B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이해할 것이다. 즉, A와 B를 제외한 나머지 알파벳은 가리키지 않는 단어, 'A와 B만'을 가리키는 단어로 구분되어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라는 단어는 A도 되고, B도 되고, C도 되고, ㄱ도 되고, ㄷ도 되고, 1도 되고, 8도 된다고 말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대방은 @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분지을 수가 없다. A,B되니까 알파벳인가 싶다가도 ㄱ,ㄷ도 되니까, 알파벳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글자 중에서 A,B,ㄱ,ㄷ을 가리키는 단어인가 싶다가도, 숫자 1도 되고 8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가 무엇인지 정의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되물을 것이다.


그래, 그럼 @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데? 라고.


사용자가 이에 대해 @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구분되게끔 설명할 수 있으면 사용해도 괜찮다.

하지만 사용자마저도 정확하게 뭐라 설명하게 모호한데....라고 말한다면, 그건 더 이상 그 토론에서 사용할 수 없는 언어나 다름없다. 모르는 용어를 함부로 쓰지 말자...즉,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식의 애매모한 범위를 지닌 용어는 더 이상 용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토론에서, 본인들도 잘 모르는 특정 용어의 사용이 너무 빈번하게 쓰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 글을 필자가 쓰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