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진정한 기회평등은 존재할 수 있을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3. 19. 21:29

핵심은 과도한 경쟁, 상대평가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기회평등을 원한다.
모두가 공정한 선에서 출발하여 경쟁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평등이고, 결과의 평등은 절대로 있어선 안되는 일로 치부한다. 현 대통령도 공약으로 기회평등을 강조하였고, 수 많은 이들이 이 공약에 지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완전한 기회평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정말 순수한 노력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들 No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No라고 답변할텐데, 그에 대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다 같은 출발선에서 순수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사고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어떤 이는 자신의 재산으로, 또 어떤 이는 자신의 권력으로 남들보다 더 유리한 출발선을 만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2.모두가 공평한 출반선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1번과 살짝 유사한데, 애초에 타고난 집안에서부터 빈부격차나 권력, 인맥 등의 차이가 나는데, 하다못해 육체적인 차이도 존재하는데 어떻게 공평한 출발선을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맞다.
1번과 2번 둘 다 상당한 이유로 작용하지만, 본격적으로 고찰할 것은 2번이다.
과연 우리는 기회평등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허상과도 같다. 선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몸을 지닌 아이와 건강한 아이를 두고서 공부로 경쟁시킨다고 하면 과연 그것은 기회가 균등한 것일까?

세상의 많은 것들은 공부와 시험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성적을 통해 그만한 대학교를 가고, 좋은 학점을 받고, 또 입사시험을 치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 왜냐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머리-지능-학식-지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한다든가,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라 하고, 대체적으로 범(凡)인들은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지능이나 지식을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주장한다.

'공부야말로 그나마 제일 공평한 방법이다. 그나마 노력한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남들과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경쟁하는 공평한 방법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다 안다.
공부가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수한 사교육을 받은 아이가 교육받지 못한 아이보다 뛰어나고, 체력이 튼튼한 아이가 건강하지 못한 아이보다 집중력이 더 좋고, 더 오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고 서울대를 간 '머리가 비상한 아이'의 몇몇 사례를 들고와서 다들 할 수 있다고, 공평하다고 애써 말한다.

사실 이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야 원래 불공평한 것이고, 그런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지적 능력'인데,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니, 세상에서 요구하는 대로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되, 그러한 노력들-공부가 그나마 공평하다라는 믿음이라도 있어야 세상 살 만하지 않겠는가.

다시 질문을 돌려보자.
모두가 공평한 출반선을 만들 수가 있는가. 필자의 말대로라면, 과연 어떤 것이 공평한가.
누군가는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날 것이고, 누군가는 지적 능력이 부족하게 태어날 것이며, 누군가는 집안 형편이 안좋게 태어날 것이다. 공평한 출발선이라는 것은 결국 타고난 능력과 환경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흔히들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기회평등이라는 말은 '환경'에 대한 고려만 있지, '타고난 차이'에 대한 고려는 존재치 않는다. (사실 타고난 차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고려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머리를 개조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시험평가에는 사실 두 가지가 있다.
단순 암기 시험과 지적영역 시험이다.
단순 암기 시험은 평소 학교에서 보이는 시험이다. 얼마나 올바르게 외웠는가. 그리고 암기한 공식이나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는가 알아보는 시험이다. 그리고 지적 영역의 시험은 추론영역, 언어영역, 공간지각영역, IQ 테스트와 같은 시험들은 공부를 통해서 증진시키기 어려운 영역이다. 공부를 하면 조금씩 오를 수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개인마다 향상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며, 말 그대로 '타고난' 머리가 중요한 시험이다.

단순 암기 시험은 말그대로 시간을 때려박으면 되는 시험이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반복하고 반복하면 언젠가는 (지적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시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시험이 일정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지 여부(사교육이나 생활비 등)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 영역 시험은 어떠한가.
이것은 주로 타고난 머리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경제적 뒷받침,환경에 상관없는 기회평등한 시험이 아닌가. 하지만 모든 시험이 이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태어난 순간, 운명이 결정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비극적이다.

결국 어느 시험이든 간에 완전한 기회평등은 있을 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사회에서는 지식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고, 시험은 이에 맞춰서 지식과 지적 능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핵심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상대적 지식과 상대적 지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는 왜 그렇게 기회평등에 목을 매는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어째서 공정한 출발선에 목을 매는가. 그것은 바로 상대평가와 승자독식의 경쟁구조, 성적으로 인생이 좌우되기에 때문에 그렇다.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 수는 정해져 있는데 반해 시험을 통과하려는 인원은 늘 넘쳐난다. 나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잘 나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점수가 조금 못 나와도, 남들이 시험을 망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공정한 환경을 갈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누구에게나) 공정한 환경은 있을 수 없고, 하물며 시험이라는 제도마저도 획일된 기준이기에 공정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더구나 시험의 결과는 원래 여러 환경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데, 그 결과가 타인을 떨궈야 하는 '상대평가'라는 점에서 시험 외의 환경적 요소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상대평가, 과도한 경쟁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각자가 가진 패를 총동원한 경쟁은 계속 될 것이고, 그럴수록 환경요인의 영향력은 더 커져갈 것이며, 기회평등은 요원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