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돈은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낸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3. 18. 21:06

생산수단이 풍족한데, 대다수가 가난한 사회가 있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돈은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필자의 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노동과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여 지급받고, 그 돈으로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동력을 구매한다. 요리사는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돈으로 농부의 재료를 구매하고, 남은 돈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전문가가 만들어 놓은 등산장비를 구매한다. 마찬가지로, 농부 역시 자신만의 노하우와 기술로 농산물을 재배하여 판매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누군가 만들어놓은 장화와 농기구 등을 구매한다.

우리는 모두 분업과 특화가 되어 있는 사회 -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여 수입을 창출하고,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해당하는 부분은 수입으로 대체하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돈이라는 것은 보증수표로서 어떤 물건이든 사고 팔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우리는 돈을 통해 타인의 시간을 구매하고, 타인이 만들어놓은 물건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래서 부자들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훨씬 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아직 개발중에 있지만, 우주 여행이 있겠다. 물론 그 경험이 앞으로의 진로나 어떤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겠지만 말이다. 이젠 부의 다소(多小)는 경험의 다소로, 시간의 다소로 이어지고 있다. 똑같은 80년이라는 수명이 똑같지 않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인프라에 대한 구축수준이었다.
생산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그 시절에 돈의 위력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돈이라는 것은 상대적이기에, 모두가 가난한 시절엔 돈의 위력은 더 크고, 모두가 풍족해지는 시절엔 돈의 위력이 감소한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대게 모두가 가난한 시절은 생산수단이 부족한 시절인 경우가 많다. 생산수단이 부족한 시절이 뜻하는 것은 돈이 있어도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의 귀족이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가. 그 시절에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가. 해외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남극과 북극을 갈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그 시절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많은 이들이 풍족해진 시대가 왔다.
여전히 많은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반대로 수많은 나라들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현재 가난한 나라조차도 옛 시절에 비해 훨씬 많은 소비력이 생겼다. 선진국은 생산수단이 매우 풍족하여, 소비를 미덕으로 여긴다. 이 상황에서는 부의 다소가 경험의 다소, 시간의 다소를 만들어낸다. 능력있는 의사나 요리사가 없어서 돈이 있어도 이용할 수 없던 시절에서 이젠 돈으로 얼마든지 초청해서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 '돈은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구절은 어느 정도 경제적, 생산적 수단의 기반이 쌓여 있는 곳에서 통용되는 말인 셈이다. (물론 중세시대에 농부와 귀족의 삶을 비교해보면 시간과 경험의 차이가 일어난 건 마찬가지다.) 이는 생산수단이 풍족한 - 인프라 구축이 매우 잘되어 있으나, 다수가 가난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 즉, '돈은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문구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에 대한 답은 분명히 '예스'다.

마르크스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과 생산력의 모순 심화를 예견했고, 그에 따른 혁명이 일어날 거라 예견했다. 필자는 혁명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모순 심화에 대해서는 심히 긍정하는 바이다. 기업들은 점점 커지고 있고, 초다국적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여러 분야에 진출하여 블랙홀처럼 생산수단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해당 분야의 연봉과 물건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가격을 올리면 올라가는 것이고, 내리면 내려가는 것이다. 그들이 지불하는 연봉은 해당 분야에서 가장 높은 연봉에 해당하게 된다. 결국 이는 생산수단은 풍족한데 다수가 가난한 사회로 이어진다.

다국적 기업들의 강력한 생산수단은 수많은 것들을 생산해내고, 수많은 이윤을 거두어 가겠지만, 해당 기업들의 외주를 맡는 업체들은 부스러기 이윤을 챙겨갈 것이고, 그 부스러기는 고스란히 그 업체에 근무하는 연봉으로 지급될 것이다.

1%의 기업들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1%의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만이 그나마 부를 가질 것이며, 나머지 기업들과 나머지 노동자들은 부스러기 부를 나눠갖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 사이의 빈부격차는 경험의 격차와 시간의 격차를 만들어낼 것이다.

과연 마르크스가 예견한대로, 인류는 그러한 극심한 빈부격차의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