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상대방을 지목해서 나를 괴롭혔다, 나를 때렸다고 주장했을 때,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한 까닭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정말로 피해를 당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무고죄라고 한다. 가해를 저지른 사람이 증거를 인멸하는 일이 빈번하듯이, 반대로 피해를 당했다는 식으로 포장해서 누명을 씌우는 일도 빈번한다. 그렇기에 우린 일어난 일을 알 수 없고, 증거에 입각해 추적하며 밝히는 것이다. 우린 철저하게 제삼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피의자 둘 모두의 주장을 의심해봐야만 한다.
그러나 요즘 '공감'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시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약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몰라도 피해 사실을 주장하면, '피해자'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상대방을 욕하기 바쁘다. 중립기어는 풀어버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죽일 기세로 달라든다. 그렇기에 자칭 피해자들은 늘 인터넷에 피해를 주장하며 각종 이야기를 꺼내 들어 여론전을 형성한다. 이는 솔직히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법 체계 탓이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가해자는 늘 당당하며, 피해자는 늘 숨죽여야만 한다. 그렇기에 여론전을 펼치게 되는데, 문제는 먼저 주장한 사람은 무조건 피해자가 되고, 지목된 피의자는 가해자로 프레임이 짜여 버린다. 그리고 대 마녀사냥 시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처벌이 부실한 법체계, 그리고 부실한 수사, 피해자를 매도하려는 분위기, 인터넷 상에서 조그마한 흠결만 생겨도 잡아 족치려는 마녀사냥의 정신, 약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약자가 선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정신은 이제 '피해자'로 옮겨가고 있다. 아직은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바로 피해자로 판단하고,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피의자의 입을 틀어막고 여론으로 죽어라 팬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개나 줘버렸다.
사람들은 무고죄를 향해 분노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인터넷 여론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들의 신상을 낱낱이 털어 조리돌림하기 바쁘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언론은 일단 피해자, 가해자로 헤드라인을 박고 본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2차 가해예요! 당신은 눈물도 피도 없어요? 소시오패스예요?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하는 것부터가 상처라고요! 당신도 당해 보세요!라고.
글쎄다.
증거가 없으면 우린 함부로 누군가의 주장을 믿어선 안된다. 그것이 진실로 피해자의 말일지라도. 그건 공간적, 시간적, 물리적 제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이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그러한 최소한의 규칙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끝에 남은 것은 여론전과 혼란 뿐이다.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는 심정으로 그 지난한 싸움을 하고, 고통을 받아야겠지만, 그것이 필요한 까닭은 제삼자가 이기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일어난 2차 가해도 충분히 보상을 해줘야만 할 것이다. 2차 가해라는 것을 핑계로 우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성역화하고 있다. 진실로 피해자면 안타깝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줘야만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해자-약자라는 이미지로 우리의 눈을 속이는 악마일 수도 있다. 공감을 핑계로, 2차 가해라는 것을 핑계로, 우린 진실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진실을 알아보는 과정이 누군가에게 많은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우리의 눈으로 진실을 파헤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법조계 사람들이 할 일이다. 뭐 그들이 제대로 못하니 현실 여론전이 펼쳐지고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린 법이 제대로 구실을 못한다는 핑계로, 이지메, 조리돌림, 혐오를 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징벌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내 스트레스 해소, 사디아를 향한 갈망 해소를 목적으로 둔 인터넷 마녀 사냥일지도 모른다.
우린 늘 중립기어를 지키고, 타인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피해자의 주장과 피의자의 주장을 꼼꼼히 비교해보면서 자신의 신념대로 지지를 보내주면 된다. 조리돌림하지 말고, 상대방과 상대방의 지지자들을 향해 힐난할 필요도 없다. 피의자를 믿는 사람은 그들을 지지해주면 되는 것이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을 향해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의 결과는 증언과 증거로 어련히 밝혀지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저절로 응징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응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화내도 충분하다. 우리는 심판관도 아니고, 재판관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 밖의 3자일 뿐이다. 덮어놓고 2차 가해라고 하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고인을 성역화하지 말라.
이성을 요구하는 판단에 '피해자는 약자, 약자는 선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고정관념에 휘둘려서 눈 가리고, 진실을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세고 셌다. 진실을 알아보기엔 귀찮고, 욕할 사람은 찾아야겠고,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넘쳐 난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이라고 포장하고, 피해자의 심정에 깊게 공감한다고 포장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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