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욕망의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7. 24. 10:44

에어컨 소리에 빗소리가 섞여 들려오네요.
네. 비가 내리고 있어요.

추적추적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는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 주지요. 누워서 휴대폰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조금.. 졸리네요.

1마일족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오래전에 쓴 글 중에 소개한 적이 있었죠. 1마일 이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고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며 살아가다보니 역설적으로 행복도가 올라가버린 사람들이죠. 일본의 사토리 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어요. 오늘은 욕망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문득 제가 1마일족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것은 대게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것들, 그리고 취미생활이죠. 하지만 전 천성이 게으르고, 집돌이라서 굳이 돈 쓸 일이 없어요. 왠만한 것은 집주변에서 해결하고 이따끔 필요한 것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할 뿐이에요. 어릴 땐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뭐랄까 욕망이 넘쳐서 늘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욕망 그 자체가 줄어버린 것 같아요.

부차적 욕망은 삶에 있어서 단기적인 이정표가 되지요. 뭔가를 사고 싶으면 돈을 모으고,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 좀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시간을 쪼개고, 더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그에 따른 수고를 들이지요. 그러한 부차적 욕망들이 모여서 삶을 이루고, 또 활기를 불어넣어 더 크고장기적인 욕망이나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들어줘요.

하지만 전 뭘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맛집에 가자고 한다면 가긴 가겠죠. 하지만 구태여 찾아다니며 먹진 않아요. 그렇게까지 먹을 정도로 원하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요즘엔 속 편한 것이 좋고, 건강도 생각해서 적당히 먹고 치워버리지요. 그렇다고 옷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직장에서 입는 옷, 집에서 편안하게 입는 옷 이거면 충분해요. 예전에 한창 수집했던 취미들도 이젠 시들어졌구요. 그렇다고 돈이 드는(장비가 필요한)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구요. 영화도 누가 보러 가자고 하면 가지만 굳이 챙겨 보러 가진 않아요. 드라마도 잘 안 보고요. 뭔가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무기력해진 건 아닌데, 회사-집 반복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어요.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인 삶이라 생각하는데, 전 걱정이에요. 이렇게 뭔가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없어도 되나 싶어서요. 전과 달리 스스로 느낄 정도로 물욕이나 욕망들이 줄어드는 것이요. 긴 시간 백수로 지내면서 이런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경험이 부족해서 더 좋고, 더 맛있고, 더 행복한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지.

이러한 귀차니즘은 갈수록 더 할텐데 큰일이에요. 체력이든 나이든 뭐든 간에 갈수록 힘들어지니, 경험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최대한 겪으면서, 욕망을 표출하고 충족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p.s
쓰다 잠들어 오전에 편지를 마쳐요.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안정적이에요.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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