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오징어 게임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10. 4. 11:35

오징어 게임
감독: 황동력
장르 : 데스 게임, 서바이벌, 스릴러, 드라마

얼마 전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지만 리뷰를 써야겠다 마음먹었음에도 뭔가 내키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리뷰를 쓴다. 오징어 게임은 썩 잘 만들었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만큼 흡입력 있는 재미가 있었다. 필자도 2~3화씩 보려다 참지 못하고 9화까지 내리 쭉 달렸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우린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리뷰를 쓰고자 한다.

이 드라마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3가지다.
1. 장르는 데스 게임, 내용은 인간에 대해 다룬 드라마.
2. 장르의 클리셰 비틀기.
3.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관계도.

1.
이 드라마는 데스 게임의 장르를 차용하고 있다. 데스 게임이란 말 그대로 목숨 내놓고 하는 게임이다. 등장인물들이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형태다. 그렇기에 데스 게임 장르는 몇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바로 비범한 등장인물이다. 등장인물로 천재적인 주인공이나 주인공을 도와주는 천재적인 조연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패배하여 죽는 순간 이야기도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머리가 비상한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웅주의를 따른다. 두 번째로는 게임이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그 게임은 최소한 겉보기엔 불공정하지 않아야 하며, 룰이 정교해야만 한다. 룰이 어수룩하여 관객조차 룰의 허술함을 알 정도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불공정하다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데스 게임은 저 어려워 보이는 게임을 주인공 일행이 어떻게 허를 찔러 극복하는지 보임으로써 관객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영웅과 맞서 싸울 강력한 적(라이벌)이 등장한다. 주인공 혹은 주인공 일행은 그 강력한 적을 물리쳐야만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다. 네 번째로 오직 게임 안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갈린다. 도중에 게임이 중단되거나 끝나서 게임 외에서 인물들의 운명이 갈리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기본적인 틀은 분명 데스 게임 장르를 차용하고 있다. 데스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고 주인공이 어찌어찌 승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주 내용이 데스 게임의 진행-승자와 패자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서사에 치중하고 있다. 참가자들 중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풀어내면서 그들이 어째서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게임 외적의 상황을 풀어내는데 치중하고 있다. 결국 데스 게임은 등장인물들의 군상극을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데스 게임 장르인데, 데스 게임이 내용을 보조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2.
이 드라마에는 뭔가 비범한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물론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는 강력한 적이 등장하지만 그 적은 폭력에 의존한 깡패에 불과할 뿐이다.

게임 또한 비범한 등장인물이 필요할 만큼 어렵지도 않다. 게임의 룰이 무척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대신 그만큼 죽음과 삶의 끝에 매달려 있는 참여자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함으로써 관객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었다. 이는 영화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만화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게임 룰이 조금 복잡해도 괜찮다.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룰을 풀어주기도 쉽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럴 수 없다. 게임 룰을 이해하기 위해 관객들이 드라마를 구간 반복해서 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고, 직관적이되, 관객들의 흥미와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렬한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첫 게임으로 삼은 것 같다.

또한 주최 측에서 게임을 도중에 중단하고 참여자들을 풀어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예상외의 전개로 관객들의 흥미를 붙잡았다. 필자는 드라마를 보며 '아, 노인이 x 눌러서 아슬아슬하게 게임 진행하게 되겠네. 뻔하네'하며 보고 있었으나 o를 누르고, 게임은 그 자리에서 종료가 되었으며, 놀랍게도 주최 측은 순순히 참가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래서 다음 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과연 게임을 재개하게 될 것인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참가자들을 도로 풀어준 것인지. 그러나 주최 측의 결정은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죽음의 게임에서 돌아온 참가자들은 현실에서 다시 돈 없는 비참함을 맛본다. 그리고 주최 측이 이야기한 대로 그 기회를, 그 단 한 번의 희망이 주어진다면 이번에야말로 기꺼이 붙잡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게임의 탈출 후 재참가는 등장인물의 각오를 다지고 대립을 키우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관객들이 더욱더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데스 게임에 대한 경찰의 반응이 매우 현실적이어서 묘하게 비현실적인데 현실적인 느낌을 받게 된 것은 덤이다.

3.
각자의 사정으로 절박함을 지닌 채,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눈치 싸움을 하고, 파벌을 형성한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해 몸부림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vip들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린 사람의 목숨을 경마장에 있는 경주마처럼 보는 vip들을 보며 사이코패스나 악인이라 생각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목숨 걸고 게임에 임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스포 주의)


그렇다면 드라마의 내용은 어떨까? 앞서 필자는 이 드라마가 지닌 두드러진 특징 3가지를 이야기했다. 이번엔 드라마로서의 특징이 아닌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인물들 간의 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다.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크나큰 스포가 될 것이다.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데스 게임 내에서 진행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와는 별개로 상징적인 두 사람의 큰 서사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오일남(오영수)과 성기훈(이정재)이다.

주인공은 성기훈이지만, 핵심은 바로 오일남이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가 이 목숨을 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는 기훈도 마찬가지며, 오일남에게 있어서 기훈이는 다른 참가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인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냥 오징어 게임을 같이 해내갈 경주마 중 하나 였을 터다. 작고 힘없는 노인네에게 넉살좋게 이야기하며, 걱정해주는 성기훈. 여기까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의 선의를 지닌 흔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오일남은 기훈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즐겁게 참여하는데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날아오는 총알 속에서 제한 시간 안에 달려서 출구까지 가야하는 그 아슬아슬한 짜릿함은 오일남을 어린 시절 게임하던 때로 돌려보낸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끝난 후, 사람들은 게임을 이대로 진행할 지 말 지 투표를 한다. 이 때 투표 순서는 번호의 역순이다. 공교롭게도 1번은 오일남이고, 456번은 성기훈이다. 아마 투표가 역순이 된 까닭은 오일남이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456억이라는 상금에 굴복할 것인지, 그 인생역전의 기회를 목숨 걸고 배팅할 자신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겁쟁이처럼 도망갈 것인지 어떤지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투표할 상황까지 올 것인지, 오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이런 투표는 첫 스타트를 어떻게 끊는지가 남은 사람에게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때 기훈이는 망설임없이 X를 누른다. 그리고 게임의 진행의 진행 여부는 100 대 100으로 오일남의 표로 인해 결정되게 되었다. 이 때 오일남이 X를 누른 까닭은 명확하다. 게임의 진행 여부가 100대 100으로 나뉜 상황에선 게임을 진행해봐야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진행하는데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절반이면 과연 그 게임이 재미가 있을까? 그는 과감하게 X를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을 풀어주고, 사람들이 제발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는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쏟아지는 돈을 보던 그 눈빛과 그 돈이 사라진 후 다시 맞이할 현실의 비참함에 굴복할 사람들을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대부분의 사람이 데스 게임에 재참가를 원했다. 그것은 경찰에 게임을 신고했던 기훈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오일남은 성기훈이 이 게임을 나가면서부터 그를 눈여겨 보게 됐을지도 모른다. 게임에 들어와서 작고 힘없는 노인네인 자신에게 먼저 말 걸어준 사람, 그리고 공교롭게도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456번, 그리고 게임을 그만둔다고 표를 던짐으로써 게임을 중단으로 이끌고 간 성기훈. 아마도 오일남에게 성기훈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상대해야 할 뭔가 운명적인 상대가 아닐까란 생각을 주지 않았을까.

영화 후반부에서 오일남의 대사와 행동을 보면 오일남은 기훈이와 확실히 대척점에 있으며, 서로 겨루어야 할 운명적 상대임을 알 수 있다. 오일남은 끊임없이 기훈이를 유혹한다. 오일남은 술을 마시고 있는 기훈이에게 접근해 주최 측 말이 맞았다며, 여기가 지옥이라며, 게임에 다시 참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게임 내내 옆에서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오일남에게 있어서 기훈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목숨 걸린 게임에서 기훈이는 구태여 힘없는 노인네인 자신과 한국의 게임도 잘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와 가장 큰 힘을 지닌 조폭과 대립중인 탈북녀를 같은 팀으로서 챙긴다. 하나같이 바보같은 선택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게임을 헤쳐나갈 것인지 궁금한 것이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암흑 속에서의 학살극, 두 번째 게임인 달고나 뽑기, 세 번째 게임인 줄다리기까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서든 악착같이 살아남는 기훈이다. 오일남은 어쩌면 기훈이에게서 자신의 지난 날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네 번째 게임에서 홀짝을 제안하며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는 명백한 테스트다. 목숨이 날아갈 판국에 여지껏 해왔던 그 선한 마음을 그대로 견지할 수 있는가다. 생사고비는 넘겨온 믿음직한 동료를 버릴 수 있는가다. 이 게임에서 결국 기훈은 일남을 속이게 된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다시 한번 내기를 건다. 내 남은 구슬 하나와 너의 모든 것을 걸고 나와 대결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은 말도 안된다며 화를 내는 기훈이에게 오일남은 '네가 나를 속여서 구슬을 가져간 것은 되고?' 일갈한다. 아마도 성기훈이 이 대결에 응했다면, 오일남은 정면으로 대결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최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을 직접 참여하며 즐겼다. 어떤 관객들은 오일남은 주최자이므로 내용도 알고, 승부를 조작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그는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자다. 그런 자가 승부를 조작하고, 게임 내용도 미리 파악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게임에 임했을 것이다. 이는 세 번째 게임인 줄다리기에서도 드러난다. 지면 죽는거고. 이기면 이기는 거고. 그리고 현실에서 승자인 그는 게임에서도 승자가 될거라 믿고 있을 것이다. 네 번째 게임에서 기훈이의 가면을 벗겨낸 그는 더 이상 게임에 미련이 없다. 그는 구슬을 빌미로 게임에서 퇴장한다. 이후에 성기훈이 최종 승자가 되면 되는거고, 안되면 거기까지인거고.

어쩌면 이 모든 데스 게임은 오일남이 지난 날을 생각하며 테스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게임에서 눈치와 민첩함, 정신적 강인함을, 두 번째 게임에서는 운을, 세 번째 게임에서는 전략을. 네 번째 게임에서는 동료도 버릴 수 있는 비정함을. 다섯 번째 게임 역시 일종의 선택과 운이다. 오일남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냈고, 그렇기에 현실에서 갑이 되었다. 그리고 기훈이 역시 이 모든 게임을 이겨내고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는 456억을 모두 쓸 권리와 자격이 있다. 그러나 기훈이는 단 1만원만 찾아갈 뿐 어떠한 돈도 쓰지 않는다. 1년 후 오일남은 기훈이를 다시 부른다. 그리고 다시 내기를 제안한다. 네가 원하는대로, 네가 이기면 내 목숨을, 대신 내가 이기면 너의 모든 것을 가져가겠노라고. 기훈이는 그 제안에 응한다. 그런 내기는 불공평하다며 네 번째 게임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걸고 배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내기에 응한 것 자체가 기훈이가 비로소 오일남과 같은 위치에 섰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내기는 끝내 기훈이가 이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성기훈과 오일남, 두 인물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두 인간 유형이다. 친구, 가족, 감정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시련을 이겨낸 후, 충족된 삶에 재미만을 갈구하게 된 오일남과 오지랖을 부리다 친구, 가족 등 모든 것들에게서 버려진 채, 오징어 게임에서 모든 시련을 이겨냈음에도 늘 결핍된 상태에 머무르던 성기훈. 운명의 신은 결국 기훈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오일남은 끝내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죽었다.

오일남이 죽은 후에야 기훈이는 그 459억 9999만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기훈이는 오일남의 경주마에서 비로소 오일남과 동등한 위치의 경주마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영화의 개연성이나 조직의 허술함 등에 대해 말도 많지만, 그럼에도 그전까지의 재미와 몰입감으로 이 모든 것들을 커버할 수 있는 드라마다. 조직의 허술함 같은 경우 필자는 이것이 더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시와 통제가 완벽해보이는 조직일지라도, 사람이 하는 이상 분명 어딘가 틈은 있다. 그리고 그 틈은 놀랍게도 조직의 업무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허술한 곳에서 생긴다. 그것이 완벽을 기하는 조직이라면 더욱이. 또 마지막 오징어 게임이 게임으로 진행할 이유가 없어져버리고, 후반부 게임들을 너무 빠르게 끝내버린 점은 아쉽지만 꽤나 재밌게 잘 만들었다 생각한다.

킬링타임용으로 추천드릴만 하다.
한번에 몰아서 보길 추천드린다.

p.s
데스 게임류 만화책에 관심 있다면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을 추천드린다. 결말이나 후반부가 망했지만 게임을 풀어가는 과정이 매우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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