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어릴 때가 좋은 거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7. 25. 05:45

어렸을 땐 '어릴 때가 좋은 거다'라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젠 알 거 같다. 어느 새 나이를 먹어버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케케묵은 꼰대일려나. 각자의 입장이란게 있으니까.

나도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땐 나름대로 학교-집-학교-집으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절엔 그 나름대로의 고민이 많았다. 교우관계와 이성문제, 그리고 성적표와 대학 등등. 단일한 목표아래 친구들과 경쟁하며, 뭔가 해내간다는 것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충분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땐 주변에 신경써야 할 것들이 없어서 내 시간들을 온전히 내 통제하에 놓고 쓸 수 있다는 것이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가장 큰 매력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건 아니었다.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들(성적이라든지)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 손 안에서 내 시간을 맞춰서 통제했고, 그렇기에 난 그 시절 온전히 내 경험, 내 감정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똑같은 경험일지라도 더 깊게 느낄 수 있달까.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사회인으로서 요구되는 것과 최소한의 기준선들을 맞추다보면 신경쓸 것은 많아지고 시간은 늘 촉박하다.
당장 생계 걱정으로 직장을 잡아야 하고, 필요하면 야근을 해야 하며, 이에 떨어진 체력은 퇴근 후 시간을 잠으로 잡아먹게 만든다. 점점 약해지는 건강을 위해 운동은 이제 필수가 되어가고, 노후설계 및 자산관리도 챙겨야 한다. 혹여나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다보면 육아와 함께 가사 전반에 신경써야만 한다. 여기에 사회인으로서의 인간관계는 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해가는 육체와는 달리 활발하게 활동해야만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짐은 갈수록 늘어난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동시다발적이며, 끝맺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정신없이 챙기다 보면 어느 새 나 자신은 사라지고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

어릴 땐 나 하나에 치중하고 나의 경험과 생각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이 모든 사회활동으로부터 격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통제를 당했다.

그러나 마냥 반대로 좋아보였던 사회인의 자유가, 내가 이 자리에 서보니 생각만큼 자유롭지도, 좋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다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것 같다.

통제된 편안한 삶과 자유로우나 책임을 짊어져야만 하는 삶.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순 없다. 아무래도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고, 각자의 고충이 있으니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자유인이 되어버린 이 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문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