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때가 더 안 좋았을려나.
돈을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관심갖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린 아이들한테나 교과서적으로 가르치는 말에 불과할 뿐 현실은 직업의 높낮이를 보고 대하는 태도가 다르던 시절이었다.
이론적으로, 교과서적으로,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실상은 전혀 현실은 달랐다. 염치와 체면의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나마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것에 일말의 안위를 느껴야 할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존귀하게 번다'는 말처럼, 우린 돈 그 자체보다 어떠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배웠다. (어쩌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현실이라서 존중하라고 가르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젠 가장 낮은 곳에서 존귀하게 돈을 버는 일은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돈을 버는 자들은 패배자이며,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들이 그런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해! 노력을 안 했잖아. 공부를 안 했잖아. 경쟁에서 밀렸잖아!'로 귀결된다.
이젠 가장 낮은 곳에서 돈을 버는 건 가장 천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패망으로 이끌었던 사농공상의 정신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했다. 대한민국을 성공신화로 이끌던 높은 교육열은 사농공상의 정신을 공고히 만들었다. 그것도 이상하게 왜곡된 채로.
도덕적인 면에서는 돈 버는 방식보다 돈 버는 액수를 중시하는 결과적인 면을 보지만, 돈 버는 방식을 벌어들이는 소득에 맞춰 보는 왜곡된 계급의식이 만연하다.
연소득이 높은 전문직은 인정하지만, 연소득이 높은 육체 노동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몸만 튼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에 그렇게나 돈을 많이 주냐며 의문을 표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버는 돈도 가장 낮아야만 하며 그 돈벌이에 맞는 존재여야만 한다. 남들을 자신의 발 아래두고 나서야 직성에 풀린다.
노동 그 자체의 존중과 가치는 사라졌고, 돈을 잘 벌 수 있냐 없냐의 방식으로써만 노동의 가치가 결정되며, 돈을 벌어들이는 규모에 걸맞는 노동의 종류와 형태가 결정되어 있어서 이런 규격 외의 존재는 배척을 당한다. 이건 마치 자본주의와 계급이 혼재되어 있던 조선말 상황이 재연되는듯 하다.
이건 나만의 갇힌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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