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방이 아닌)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에서 삶에 대한 선망이 있다. 마치 도시인들이 목가적인 농촌의 삶을 생각하며 환상을 품듯이.
나고 자란 곳에서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논과 밭, 그리고 그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1차 산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 및 사회뿐이다. 과거였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1차 산업의 종사자가 됐을테지만, 정보와 교통의 발달로 아이들은 이 사회의 외부에 또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그런 의미로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교과서에 실린 80~90년대 문학은 현대와 동떨어져있다. 그런 묘사가 있지 않은가? 시골에 사는 주인공 앞에 도시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온다는 것. 그 아이는 피부가 곱상하고 하얗다는 것. 까무잡잡한 시골 아이들은 신기한듯 바라본다는 것 등등. 물론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육체노동을 하는 시골 아이들과 대조되는 도시 아이들을 표한한 거겠지만 이런 묘사를 제치고서라도 피부가 하얀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새로운 친구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외부인-외부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걸 암시하나, 정보와 교통이 발달된 현대에 와선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드물다. 오히려 이런 장면들은 편견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 도시아이들과 시골아이들 모두에게.
유사한 것으로는 시골의 그 폐쇄적인 구조와 외부에 대한 배척성을 드러내는 영화 역시 도시인들에게 시골에 대해 두려운 편견을 형성시킨다. 교과서는 이제 옛날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적절히 거르지만, 리얼리티와 이미지를 추구하는 영화는 독자들이 거르기 쉽지 않다. '고작 영화일뿐이야!' 라고 말하기엔 영화의 파급력과 강렬한 인상들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잔상을 남긴다.
여튼 간에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깔끔하고 반듯하게 양복을 입고서 회사로 출근하는 도시인들을 접한다. 대중매체 등장하는 그들은 아침에 일터로 나간 후 퇴근 후에는 잘 정돈된 집에서 쉬는, 일터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또한 쉬는 날에는 종종 공연이나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을 즐기며 여유를 갖는다. 이렇게 대중매체에 비춰지는 도희적인 삶은 일과 생활이 일체화 되어 있는 시골의 아이들을 매료시킨다. 실상 그들도 잦은 야근과 지옥같은 출근길, 그리고 군중 속에 고독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서도. 그건 마치 나방을 끌어들이는 환하게 빛나는 불꽃과도 같다.
1차 산업의 특성상 일터와 생활하는 곳이 뒤섞여 있어서 노동과 휴식이 짬짬이 이루어지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게 되는 패턴은 시골을 따분한 곳으로 만든다. 간간히 이루어지는 휴식은 일시적 대기 상태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만 하다 하루를 보내게 만든다. 일과 삶이 일체화 되어 버린 이곳에 상업적 문화시설의 인프라 따윈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것 또한 시골의 따분함을 가중시킨다. 변함없이 자라온대로만 하루가 흘러가는 곳이기에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 나름 장점이긴 하지만 따분함과 안정감은 빠르게 흘러가는 도희적 삶에 대해 선망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필자는 어릴 적 주변 친구들에게서 도희적 삶을 원하는 그런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그들은 도시에 남아 있길 바랐으며, 성인이 된 지금 현재 많이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원래 외부인은 깊은 속사정을 알 수 없는 법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원하는 것이 사람이니, 뭐든지 겪어본 후에야 알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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