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몇 번이고 글을 쓰다가 지웠다.
글을 쓰면서 잘 풀리지 않아 다음에 써야겠다고 놔둬버린 글들도 있다. 이젠 글들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주기가 무척 길어졌다. 사람은 변해간다는데 올해 내 변화의 끝이 글쓰기의 퇴보다.
......
나는 사람을 만난다면 유연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고가 유연해서 마치 스펀지마냥 상대의 세계를 흡수하고 익혀서 점차 세계가 넓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
오랜 세월 끝에 사고가 고정되어 버린 사람은 변하기가 참으로 어려우니까.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나이를 따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어린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성장할지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끄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멘토로서 멘티가 쑥쑥 성장하는 걸 보면서, '봐! 내가 저렇게 키웠어!' 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부모님이 느낀다는 자식농사 같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런데 인간관계라는 것이 원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이리저리 얽히고 부딪치면서 엮어가는 것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처럼 가족과 같이 이어진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거나 자신의 뜻에 맞춰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일 텐데 말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치는 것이다.
만약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들일 수 있는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단지 '내'가 편하다는 것 그거 하나다. 물론 그것이 굉장히 효율적이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맞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끼워맞추다가 실패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으니까. 그리고 이젠 실패에 따른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큰 부담이 되는 시대가 와버렸으니까.
그래서 이젠 사람들은 얽히고 설키면서 부딪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들을 속에서 비슷함을 찾아내는 반가움을 즐기지 않는다. 그냥 서로 구축되어 있는 세계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 자신과 자연스레 티키타카가 되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인간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비교 대상으로서 우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현실은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되어 사고가 고정되어 버린 사람들끼리 부딪치게 되는 인간관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괜스레 실패 가능성을 안고 애초에 안 맞는 세계를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단 나와 맞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여 성공확률을 높이고, 효율성도 높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효율성과 성공확률에 맞춰서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선호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듯이 내가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선호하는 것도 무의식적 계산에 따른 선호도일 테니까.
여하튼 간에 앞서 말한 그런 멘토 같은 정신은 아닐 지라도 난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전혀 다른 영역을 좋아하고,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그 새로운 영역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관심 갖고, 서로 익히면서 '오늘의 앎의 지식이 하나 더 늘었다'처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좋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앞서 말한 '사고가 유연한 사람'은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스펀지 같은 사람과는 달랐다.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의 세계를 포용할 줄 아는, 더 높은 차원을 가진 사람이었다. 세계가 구축되지 않아서 지으면 짓는대로 건축되는 세상과 세계가 구축되어 있음에도 그 사이사이에 건물을 조화롭게 건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니까.
이제 보니 내가 눈이 참 높다.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찾아다닐게 아니라 내가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지. 본인 편하자고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야말로 나는 변하지 않겠다는 자기모순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남을 포용할 수 있는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 된다면, 나의 상대방 역시 그런 사람이길 기대해본다.
p.s
쓰다보니 이상형이다.
p.s 2
최근에 올릴 글들은 전부 인간이 주제다.
p.s 3
서로 다른 상대방에게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는 반가움.
서로 같은 상대방에게서 알게 된 다른 점의 낯섦.
어느 쪽이 관계에 있어서 오래 지속될까.
p.s 4
난 아직까지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되,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미개발된 세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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