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거리는 제법 쌀쌀했다.
느낌은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쯤.
하늘은 우중충했고.
거리엔 바람이 휘날렸다.
공기는 가만히 있으면 체온을 가져가는 정도의 시원함.
비 온 뒤 아직 햇살이 드러나지 않은 이 우중충한 잿빛 거리를 나는 좋아했다. 그건 내가 우중충한 사람이라서 그런걸까. '니들이 어둠의 자식들이냐!' 고함을 외치며 커튼을 걷던 선생님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잿빛 거리와 음산한 추위 속에서 내 집의 아늑함이 돋보이는 것 같아서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고통스러울수록 빛나는 법이니까.
시장을 걸으니 몸이 살짝 더워지는듯 했다. 아쉽게도 파전은 사지 못했다. 나는 시장을 좋아한다. 각종 음식을 조리해서 파는 것도, 볼거리가 많은 것도. 무엇보다도 제 값에 물건을 사는 그 느낌이 좋다. 거래하다보면 물건이 제 값어치를 못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 거래가 있고, 물건을 제 값에 사는 것 같아 기분 좋은 거래가 있지만, 시장은 명백히 후자다.
임대료는 제품의 만족도를 떨구는 대표적 요인 중 하나다. 요즘 어느 가게를 가도 만족감이 드는 거래를 하기 쉽지 않다. 그냥 개구리 끓는 물에 삶아지듯이 '이 정도 가격이면 그리 비싼건 아니네' 느낌으로 적당히 타협가며 물건을 사는 느낌이다. 만족도에 대한 기대는 버린지 오래고 가격이나 맞추는 느낌이랄까. 물가가 원체 비싸야지.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사람이 보인다. 어떤 남자에게 붙잡혀 포교활동 당하고 있는 사람에서부터 버거킹을 들고 가는 사람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마치 월리를 찾아라처럼 그 사람이 보였다. 비슷한 옷차림에 뒷모습이 닮은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은 이렇게 가끔씩 날 툭하고 건드리곤 한다.
아무런 소득없이 집으로 돌아와 눕는다.
바닥은 여전히 차갑다.
따뜻한 온돌바닥이 그리워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