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삶을 살았던 엔트족이 끝내 딱딱하고 마른 껍질로 되돌아갔듯이, 한창 생기를 빛내며 날카롭던 감각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무감각해지고 무덤덤해진다. 지금의 내 인생은 딱딱하게 말라버린 나무껍질과도 같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의 인생들은 오래전에 늘어진 비디오 테잎마냥 늘어져간다.
루즈해져 버린 내 인생은 보며 '원래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여러 차례.
육체는 정신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육체가 먼저든 정신이 먼저든 어느 쪽이든 간에. 루즈해져 버린 내 인생만큼이나 늘어져버린 정신에 발맞춰서 육체의 세포 분열이 점차 둔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식사하는 양이 좀 더 줄었고, 활동 양이 줄었다. 그러나 몸은 더 무거워졌으니 육체적 피로는 더 쉽게 느낀다. 열심히 활동하던 만큼이나 혼자인 것이 익숙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혼자가 익숙해져 갈수록 활동도 줄어드는 듯하다.
타인에 점차 무관심해지고, 내 삶 속에서 감각이라는 것들이 사그라져 가는 것을 느낄 때면, 불현듯이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난 정말 괜찮은 걸까?'하며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볼 때마다 왜 과거 세대가 20대 중후반에 결혼을 했는지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그건 비유하자면 콘텐츠가 끝나버린 게임에서 새롭게 콘텐츠를 창조하는 느낌이다. 20대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 콘텐츠가 끝나겠냐만은 술 마시고, 연애하고, 여행 다니고, 공부하고, 취직하면 대충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다 즐긴 셈이다. 놀거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생겼다지만 결국엔 그 역시 논다는 행위에선 카테고리의 반복일 뿐이다. ......육아는 인생에 있어서 아예 새로운 콘텐츠다. 그 어마 무시한 콘텐츠를 쉽사리 진행하기 어렵기에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결혼하고, 가족을 형성한다는 것은 인생에 비어있는 칸들을 오밀조밀하게 메꾸는 행위이니, 이는 앞으로의 인생 칸을 메꾸는데도 도움이 된다. 비어있는 칸을 놔둔 채 연결하는 것보다 이어져왔던 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더 쉬우니까. 이 기간이 긴 공백기로 남을수록 앞날의 칸을 채우는데 힘들어지고, 또 되돌아보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신규 유저가 없으면 게임이 서비스 종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 50년 뒤의 한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분위기 가라앉는 생각은 여기까지.
머릿속에 늘어진 테이프를 억지로 재생한다.
고목이 끝부분에 싹을 틔우듯이.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아침이었다.
단지 봄과 같지 않게 조금은 서늘했고, 하늘은 잿빛이었을 뿐이다. 예상과는 달리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빗소리인지. 나는 사실 비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오후 내 방 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한창 활동해야 할 낮시간에 부리는 여유로움과 그 적막감이, 나를 차분하게 다독이는 듯한 빗소리의 고요함이 좋았다. 그것은 활동을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바쁜 와중에 부리는 여유로움은 꿀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비활동적인 나에게 꿀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한번 기쁨을 누리고 나면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혼자인 것이 익숙해져 버려서 같이 있을 때의 그 즐거움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적 교류 하는 법을 잊어먹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전보다 더 재미없어졌고, 교류할만한 콘텐츠가 사라졌기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젠 조연이 아니라 엑스트라1로 밀려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좋은 징조는 아니다. 어찌됐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살아가기 위해선 죽기 전까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빗소리를 듣고 있다보니 문득 당신과 함께 빗소리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침대에 앉아서 창밖의 빗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좋지만, 그 침묵이 가져다주는 어색함을 못 견디고, 난 또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그러고보니 핫초코를 좋아하던 당신을 위해 핫초코를 사다놨었다. 물론 나도 핫초코를 좋아한다. 겨울 내 마시던 그 핫초코는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따뜻했고 더 달콤했다. 여하튼 침대에서 일어나 주절주절 헛소리를 하면서 그 핫초코를 타다 주는 것이다. 그리고선 당신을 꼬셔서 당신이 좋아하는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것이다.
- 망상은 여기까지다.
비가 계속 내린다.
이런 날엔 침대에 앉아 가만히 불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땀이 뻘뻘나도록 온돌을 지펴놓고 바닥에 누워있는 것도 좋다.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분위기가 있다. 벽난로와 침대로 이루어진 서양식 주거공간엔 피자를 주문해서 먹어야 할 것 같고, 바닥의 온돌이 깔린 동양식 주거공간에선 막걸리와 파전을 사다가 먹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일치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뜨끈한 온돌바닥에 침대가 웬말이고, 피자가 웬말인가. 온돌바닥엔 역시 파전에 간장이 제격이다. 아, 내일은 파전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