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더운 날 나와 함께 솜사탕을 먹으며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날은 가을이라 하기엔 덥고, 여름이라 하기엔 한더위의 기운이 높지는 않은 그런 날이었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여름과 가을 사이에 아주 잠깐 숨겨진 봄과 같은 날씨라고 할까.
나와 같은 동아리였던 그 아이는 종종 나와 함께 대학로를 걷곤 했다.
동아리 모임에 때문에, 대학교 과제 때문에, 그리고 공모전 준비 때문에, 혹은 간단한 상담을 이유로 그렇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생각보다 너와 많이도 다녔구나. 너의 그 특유의 예의바름과 화장기 없는 단아한 외모를 난 좋아했던 것 같다.
"어, 혹시 솜사탕 좋아해? 솜사탕 한번 먹을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그 날은 대학교에서 우연히 너와 마주친 날이었다.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는 중이었고, 너는 강의를 끝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내려가던 길이었다. 이제는 동아리에 나가도 돈만 뿌리고 나오는 것이 예의가 될 정도로, 뒷켠에 있는 척 없는 척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석이 되어버린 나를 향해 넌 반갑게 아는 척해주었다.
그날 어떤 이유로 너와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게 됐는지 이젠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네가 무언가를 물어봤고, 그것에 대해 답변하다보니, 네게 시간이 있냐고 물어봤던 것으로 대강 기억한다. 학교 정문까지, 그리고 대학로까지 천천히 걸으며 너와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고, 차선이 제법 되는 도로에 도착했을 때 그 앞 노점상에서는 커다란 솜사탕을 팔고 있었다.
그 땐 무슨 생각으로 너에게 솜사탕 먹자고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솜사탕.
그것은 그 달달하고도 가벼운 느낌 때문에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면 연인들끼리에서나 같이 먹는 그런 상징적인 먹거리가 되어 버린 솜사탕. 그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있어서 같이 먹기엔 나름 조심스럽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넌 나의 이 찐따스러운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로의 한 벤치에 앉아서 솜사탕을 찢어먹으며 즐겁게 대화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곧 아르바이트할 시간이라며 떠나는 널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솜사탕만큼이나 가볍고 달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그 더운 날 시원한 까페에 데려갈 생각 못하고 멍청하게 대학로나 걸으며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나도 참 무정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참으로 둔한 인간이었다. 그 뒤로 우린 솜사탕을 같이 먹지 못했고, 이제 같이 먹기엔 너무 늦어버린 사이가 됐다. 그 날의 솜사탕은 어른이 되고난 후, 그리고 대학로에서 먹어본 처음이자 마지막 솜사탕이었다.
분명 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너의 그 강인한 정신과 예의바른 성격이라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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