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회생활에 관한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6. 30. 06:01

안녕하세요. 새벽에 잠에서 깨어 편지를 써봐요.

이번 편지는 며칠 전에 쓰다 만 편지인데 피곤했던 탓인지 쓰는 도중에 잠이 들어버렸어요. 앉아서 편지를 쓰다가 생각이 많아져서 누워서 생각했더니 그대로 잠이 들이 들었네요. 원래 계획은 쓰다만 몇몇 편지들도 같이 올리려던 거였는데, 그러다 보니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요. 세상일이 그래요. 마음먹은 날 진행하지 않으면 어느새 하루하루 미루게 되고, 결국 흐지부지 되지요. 그것이 체력적인 이유든, 시간적인 이유든, 게으름 탓이든, 그 어떤 이유든지요. 해야 할 이유는 하나지만, 하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도 많지요. 그래도 이렇게 늦게나마 썼던 것들을 마무리 짓고 있어요. 

이번 주는 여유가 생길듯 해서 여러 글을 써볼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요. 하나씩 하나씩 일상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에 대한 것들을 적다 보면 쓸 말이 많아요. 그저 일상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데,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그렇다고 제 일상이 다양하다거나, 특별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저 남들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쉬고, 가끔씩 회사나 일에 대해 불평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사회생활하면서 크게 느끼는 것이 2가지 있어요.

하나는 확답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분명하게 답하는 것을 좋아하겠죠. 저도 원래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마감하겠다. 언제까지 연락드리겠다. 뭐 이런 것들이요. 그래야 상대방도 확실하게 계획에 반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일을 처리하다 보면 그렇지 못할 경우가 생겨요. 그렇게 되면 다시 연락을 드려 기한을 연장해도 되겠지만, 상대방의 계획도 꼬이게 되지요. 혹 자는 화내기도 해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일은 많고, 우선순위가 있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그건 네 사정이야 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맞아요. 어떤 분들은 공동으로 작업하기에 서로서로 조금씩 이해해주기도 해요. 저 역시 좀 더 넉넉하게 시간을 잡는 편이고, 그 외에도 할 일은 많으니까요.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면 되죠. 하지만 각자의 계획이 있고, 사정이 있는 이상 이해를 바랄 순 없어요.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나중엔 확답한 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기도 해요. 그래서 애매할 경우엔 확답을 피하게 돼요.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요. 책에서 맨날 나오는 말이 있잖아요? 무사안일주의, 책임회피, 돌려막기 한다고.... 물론 그 사람들이 비판받을 만한 것이긴 한데, 그런 사회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그래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우리가 이해해줄 필요는 없죠. 최선을 다했든 어쨌든 간에 나에게 있어서 결과가 별로면 그건 결국 별로인 거니까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만족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결국 책임회피, 무사안일주의는 자신의 입장을 중시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게 된 결과예요. 확답을 하고, 최대한 그것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해도, 그 노력을 알아주는 이는 없어요. 오직 결과를 맞추지 못한 책임만이 남아있게 되지요. 나아가 윗 직급 역시 그것을 커버해주지 않아요. 직급이 높다는 것은 연봉이 높은만큼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커버 쳐줄 것은 쳐주고, 하라는 거예요. 하지만 전 한 번도 윗 직급이 커버 쳐주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더 윗 직급이 까라면 까는 윗 직급만 봤을 뿐이죠. 그들도 그들 밥벌이 걱정하느라 그러는 거죠. 그 결과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판단을 내리는 이들은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덮어 씌우기 바쁘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다른 부서, 하위 직급들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기 바쁘죠. 그래서 하위 직급들도 이젠 확답하는 것, 책임질만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애매하게, 흐리는 식으로, 돌리는 식으로 말을 하죠.

제가 어릴 때는요, 성인이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거라 배웠어요.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서 안 좋은 것으로 배웠지요. 뭐 행적학 책에도 잘 나와 있잖아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책임회피 등이 문제라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면요. 조직이라는 것들이 결코 조직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아요. 모든 것은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지요. 개인이 실수했어도, 어떤 부분에 한해서는 그 조직들이 관여를 했기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요. 하지만 모든 것은 해당되는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지요. 그래 놓고 성과는 조직으로서 숟가락 얹고, 윗 대가리들이 자화자찬하기 바쁘죠. 말이 길어졌네요. 결론은 이렇게 책임회피,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라는 거예요. 이런 사회여도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문이에요. 모든 것이 개인의 탓으로 돌아가버리는 사회에서 과연 소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 쓰여 있는 말은 헛된 메아리일 뿐이지요. 책에서 말하던 비판적인 모습들이 왜 현실에서 나오게 되는지 그렇게 행동하는 게 편하다는 걸 느끼는 제 자신을 보면서 깨닫게 되네요.

또 하나는요, 어떤 단체 속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족쇄 같다는 생각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고개를 숙여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하죠. 나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봐서요? 아니오. 내가 속한 단체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요. 내가 욕먹는 건 괜찮아요. 내 잘못이 나 하나에게 온전히 피해로 다가온다면 까짓 거 견디거나 책임을 지면 돼요.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트집에 대해 강하게 대처하거나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주변 인물들과 얽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더라구요. 나 때문에 타인이 욕먹고,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예전에 가장 악질적인 체벌 중 하나가 바로 연대 책임이었어요. 너 때문에 다른 이들도 다 같이 혼난다는 것이요. 연대 책임 속에서 느끼게 되는 죄책감과 다른 학생들의 눈총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극기 훈련이니 뭐니 하면서 너가 잘못했으니 다 같이 한번 더! 하는 거요. 집단생활, 단제 생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집단, 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결코 집단으로서 책임을 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무슨 문제가 터지면 개인 탓으로 몰아버리고 끝내지요. 꿀 빨 때는 집단을 강조하면서요. 심한 경우엔 체벌이 끝난 후에 아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서로 분열시키는 것은 참으로 역겨운 오랜 전통이지요.

어떤 일처리에 있어서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사회에서 많은 회사들이 단체를 이루고 있지요. 공통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두가 분업화되어, 한편으로 한 몸처럼 협력함으로써 문제를 헤쳐나가요. 대신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연대 책임을 지게 돼요. 뭐 실질적으로 연대책임을 지게 되는지는 따져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그 회사가 지니고 있는 브랜드 - 정신적 지주가 손상을 입게 되지요. 사람들 역시 그 브랜드, 그 회사를 욕하게 되거든요. 회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회사를 내 가정처럼, 회사에 대해 주인의식을 지니게 만들려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자신의 일처럼 느껴야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나거든요.

그래서예요. 앞서 말한 것처럼 단체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인질을 갖겠다는 말과 같아요. 나의 행동 하나가 나에게만 고스란히 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단체에게 전해지게 되니까요. 나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입게 만들 순 없잖아요. 상대방에게 나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갑질이라는 말도 많이 등장하게 됐죠. 갑질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어서 막 휘두르는 거예요. 난리 피우고, 윽박지르고, 너의 단체에, 집단에, 난리를 피우겠다는 거지요. 한편으로 집단을 대표하는 이들은 그런 사람들은 단호하게 물리치며 커버 쳐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일단 숙이고 보죠. 갑질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며 더욱 득의양양해지고, 오만해져요. 그래서 수많은 회사원들이 성질을 죽이며 을로 지내는 것을 택해요.

그렇기에 단체에 속한다는 것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행위 같아요.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 주는 쪽은 갑이고, 서비스 하는 쪽은 을이고, 모든 잘못은 을이 책임지는 것이고, 갑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이고, 논란은 만들어내면 안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적당히 책임감을 갖게 만들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목숨줄 자체를 만들어 내지요. 그렇기에 다들 끊임없이 어딘가에 속해 있길 바라면서도 홀로 지내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지내면 최소한 내가 한 행동에 나만 책임지면 되니까요. 다들 그래서 외로움과 책임감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지요.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당신은 스스로를 책임지며 자유롭게 지내고 계신가요. 아니면 어딘가에 귀속되어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냥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가면 될 줄 알았는데, 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네요. 이런게 바로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겠지요. 불만이 많지만, 또 나름대로 사회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아직까진 사회생활의 장점을 크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요.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기도 하네요. 일을 해보니 좀 더 목표가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좋은 현상이지요. 언젠가 더 큰 세상에 활동할 것을 꿈꾸며 편지를 마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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