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려요.
때론 시원하게, 때론 습하게 말이죠.
공교롭게도 오늘은 좀 아프네요.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오늘 말이죠. 아픔은 열을 동반하고, 열은 올랐다 내렸다 하며 제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어요. 몽롱함과 그리움과 사랑은 글을 쓰기에 좋은 재료들이지요. 저는 마치 요리사처럼 이 좋은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해 나갈까 고민해요. 하지만 슬프게도, 그리움은 아픔과 몽롱함에 의해 가려져 버렸어요. 그건 마치 주 재료의 맛이 조미료의 맛에 파묻혀 버리는 것과 같지요. 어떻게, 주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을까요?
한번도 본 적 없는 이가 그리운 적이 있나요.
호기심은 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내고, 보고 싶은 마음은 그리움을 만들어내죠. 그리움의 갈증은 보고 나서야 비로소 해소돼요. 신기할 노릇이죠. 보고 싶다면 사진을 보면 되고, 듣고 싶다면 전화를 하면 되는데 말이죠. 혹시 그것은 4D 영화처럼 직접 눈 앞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을 보고 싶은 걸까요.
아마도 이러한 그리움의 감정은 기술이 발전해서 상대방과 똑같은 인공지능형 아바타가 나와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넌 진짜가 아니야! 가짜일 뿐이야!'라고 외치면서 아바타를 부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리고선 '진짜'를 그리워할 지도 몰라요. 분명히 진짜와 똑같은 아바타가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어요.
이번 요리는 실패에요. 너무 주 재료만 따로 놀아버리고 있거든요. 여기서 아무리 사랑이나 몽롱함을 넣은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들-반찬이 되어 버리고 말겠죠.
사랑이라는 재료를 요리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그래서 미각도, 후각도 다 잊어 버리고 말았죠. 마치 소비기한이 지나버린 요리처럼, 딱딱해져선 조리하려면 애를 먹게 되네요. 몽롱하게 떠오르는 사랑도, 몽롱하게 피어오르는 그리움도, 점차 굳어져 가고 있어요. 열이 문득문득 피어오르는 것처럼, 그리움이나 사랑도 이따끔씩 피어오르지만 마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아요. 원래는 달달함이나 애틋함의 맛을 조리하고 싶었는데, 맛이 나질 않아요.
그건 어쩌면, 제 멘탈이 많이 좋아져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좀 더 발전적이 되고 싶은 저의 적극적 마음과 고향에서의 심신 안정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 것일지도 모르죠. 언젠가 저의 멘탈이 작은 돛단배처럼 홀로 나부끼게 될 때면, 이 재료를 갈망하고, 다시 미각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결핍이 지닌 갈망만이 좋은 재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네요.
비가 그치는 날, 저의 이 몽롱함도, 아픔도 함께 사라질 거에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잊은 채, 힘차게 나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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