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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와 능력 그리고 앞날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5. 6. 01:41

오래 전 저는 도구의 효율성과 사람의 능력에 관해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

도구가 발전될수록 사람의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도구가 발전될수록 우린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되지만, 우리 자체의 능력은 퇴화하는 방향으로 변해갑니다. 어쩌면 해당 도구들을 사용하는 능력이 발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도구들이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일입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온갖 도구들이 주변에 넘쳐납니다. 우린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해당 도구들을 신속하고 정확한 시간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혹은 돈은 있지만 공급이 부족해서 당장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된다면, 우린 또다른 해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익숙치 않은 도구를 이용한다든지, 오래 전에 사용했던 도구를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본인의 능력에 의존한다든지 말이지요. 예를 들자면 네비게이션을 들 수 있습니다. 요즘은 휴대폰이나 차량에 네비게이션이 달려 있으며 우린 얼마든지 이것을 이용하여 모르는 곳을 찾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네비게이션도,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린 종이로 된 지도를 꺼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혹은 길을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물어서 찾아갈 수도 있고, 혹은 예전에 와봤던 기억을 되짚어서, 눈으로 직접 익혔던 길을 떠올리며 목적지를 찾아 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져버린 사람은 길눈이 익숙치 않을 것이며, 지도를 또한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도구의 발전은 분명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지만, 인간 스스로가 익힐 수 있는 능력들을 갈고 닦을 기회를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제가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입니다. 지방. 그것은 수도권에 반대되는 말로 흔히 쓰이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말이지요. 근래에 들어 사람이 부쩍 적어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은 어떤 도구나 서비스를 공급할 사람이 부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발전되고, 택배가 발전된 이 시대에 무슨 소리를 하냐고 묻겠지만, 인터넷보다 발품을 구해야 하는 도구나 서비스도 있는 법입니다. 특히나 무언가를 수리하거나 설치하거나 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어느새 그 기술자들은 말 그대로 귀한 몸이 됐습니다. 그들을 찾는 수요는 많으나, 그들의 몸은 하나이기에,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방에 산다는 것이 어떠한 기술들을 조금씩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우린 서양인들의 DIY를 보면서 무언가 멋지고 로망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곤 했습니다만, 사실 그들이 DIY를 하는 것은 인건비와 서비스 공급의 시간적 지연의 탓이 큽니다. 땅은 넓고, 인건비는 비싸니, 직접 도구를 사서 자신들이 해내가는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응급처치, 차량 수리, 배터리 교체, 차량 관리, 수도관 교체, 스위치나 전구, 전선의 교체, 모터 수리, 용접, 그 외 도구를 이용한 간단한 수리들... 처음할 땐 어렵지만, 막상해보면 또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금씩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대비해서 좀 더 확실하게 익혀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분들이 있지만, 그들을 부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니까요. 비용도 비용이고요.

이런 잡다한 기술들을 한 사람이 익힌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영역과 못하는 영역이 있으니까요. 우린 잘하는 영역을 살려서 돈을 벌고, 못하는 영역을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분업이고, 문명입니다. 문명의 혜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잘하는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통해 사회 속의 사람들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악기를 전문가처럼 연주할 수 없으니 클래식 음악회를 갑니다. 연기를 배우처럼 할 수 없으니 소극장이나 뮤지컬을 보러 갑니다. 차량을 직접 수리할 수 없으니 카센터에 가고, 에어컨을 직접 수리할 수 없으니 전문 A/S기사분을 부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것들은 전부 누군가가 그 일을 하기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어지면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도 직접 기술을 익혀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일을 대신 처리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이는 정형화하기 어려운 -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술직들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몇몇 기술직들은 매우 높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단지 현실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기술직들이 아직까지는 공급자가 넉넉하기에 체감이 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지방은 이미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비용상승은 생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저출산 -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금껏 누려왔던 도구들-문명의 혜택들을 이젠 하나둘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누리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스스로 기술들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정형화하기 쉬운 부분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를 할 것입니다. 허나, 그 시대가 오기 전에 지방은 먼저 살아남아야 할 것입니다.


도구의 발전은 효율성을 가져옵니다.
사람이 직접적으로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긴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선 도구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구에 대한 의존성은 사람의 능력을 약화시켜, 문제 대응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지금 문명은 분업과 특화를 통해서 이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은 사회를 번영시키지만 개개인의 문제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분업과 특화를 포기하고, 한 사람이 여러가지 능력을 익힌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앞으론 살아남기 위해서 이러한 비효율적인 방법을 채택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두 손과 두 발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