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두려워하지 말기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5. 8. 12:50

비대면의 시대가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공급자와 수요자가 마주칠 일 없이 편하게 서비스를 공급하고 받을 수 있게 돼서 그런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려워하기보단 그 낯섦에 대한 거북함이라고 해야 하나. 자주 얼굴을 보거나 일상에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는 친밀하게 잘 다가가지만, 1회용 인간관계 - 잠깐의 필요함에 의해 만나는 관계는 굳이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고, 정체를 모른다는 경계심이나 낯섦 때문에 대면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편안함을 선호하다 보니 불편함에 대해 비선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두려워하는 느낌이랄까요.

오래전 한 다큐멘터리로 유행했던 '불편한 진실'이란 단어처럼, [어떤 사실-진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느 방식으로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경우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하거나, 기록을 삭제하거나 아예 금기시해버리는 것]처럼 유사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요. 낯섦에 대한 회피나 금기라고 해야 할까. 정확하게는 낯섦이 주는 불편한 감정들이지요.

그런데 이 낯섦은 굉장히 광범위하지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부터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모든 경험이 이에 해당돼요. 칭찬 한 번 못 들어본 아이가 처음 칭찬을 받은 것. 한 번도 혼나지 않았던 아이가 혼나는 것. 모르는 사람과 전화를 해야 하는 것-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것.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있는 일탈을 해보는 것.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나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낯섦에서부터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과 같은 내부적 낯섦까지 굉장히 다양하지요. 낯설다는 말 그대로 익숙지 않은,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들 전부가 해당돼요. 그런데 이 낯섦은 공교롭게도 자주 해봐야 사라져요. 낯섦이 주는 불편한 감정들이 싫어서 망설이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면 망설이지 말고 해야 한다는 거지요.

한 가지 예로, 전화 공포증이라고 아시나요? 전화통화가 불편해서 전화를 회피하고, 카톡이나 메세지로만 연락하려는 것을 뜻해요. 정말 정말 마지못할 때 전화를 걸게 되는데 전화 신호음이 갈 때도 '제발 받지 말아라.'하고 기도를 하지요. 사실 저도 조금 그런 것이 있어요. 모르는 사람과 첫 통화를 하려면 긴장하게 되고 불편해서 별로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일이니까 해야지. 그러다 보니 전화를 걸 때 조금은 부담감이 덜하게 된 것 같아요.

결론은 도망치지 말라는 거에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낯섦은 언제든지 마주쳐야 할 대상이에요. 언제까지고 회피할 수 없지요. 하지만 비대면인 요즘 시대엔 회피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지요. 음식은 배달시키면 되고, 업무는 집에서 재택근무로 처리하면 되고, 생활용품도 택배로 배달시키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것에 의존하게 될수록, 마주하는 것을 회피할수록 그 낯섦은 점점 더 커지고, 불편해지고, 두려워져요.

첫 발자국이 무섭지요. 회피하는 것이 이해돼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두려움. 불안한 예측들. 그런데 두려운 것을 하지 않아도 될 - 회피할 수 있는 경로는 많은 걸요.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보면 상상외로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나의 온갖 두려운 상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타인의 실수에 대해 생각보다 관대하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나의 행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요.

도망치지 말고, 시도해보고. 그러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혼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혼내는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살아가야만 해요. 두려워 말고 조금씩 조금씩 부딪쳐 보는 것.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라 생각해요.

p.s
마주하는걸 두려워하지 않기.
두려움을 상상하지 않기.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말기.
혼나는 것을 무서위하지 말기.

까짓 거 조금 쪽팔리면 어때요?
까짓 거 혼나면 어때요?
다 지나갈 일이고 잊혀질 일인데.
온갖 두려운 상상들은 상상과 달리 내 세상을 끝내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