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남자가 할 일.
그렇기에 산업 재해는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산업 재해? 험한 일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이거 신고하면 일정 다 박살 나. 안돼. 막어. 막어. 구급차 부르지 마."
이런 식으로 남성의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풍조가 강하다.
작업장 일정, 기업의 손실을 그리도 목메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의 목숨은 대체 부품으로 끝이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은 가관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고생을 안 하려고 한다. 험한 일 안 하려고 한다."
험한 일은 험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험한 것은 당연한 거고, '남자'라면 험한 일도 군소리 없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다.
환경을 개선하라고 새끼들아.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애먼 사람만 갈아 넣을 생각을 하냐. 그래 놓고 사람이 없다고 지랄들 해요. 막말로 니 자식새끼 여기 현장 와서 일하라고 할 수 있어? 젊은것들이 험한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남자라면 험한 일도 하고 그래야지?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죽음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이 도시 인프라는 못 배우고, 무식한 애들에게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지어놓은 것이니까. 이것을 이용할 시민들은 그들의 죽음 따위 알 바 아니다. 어차피 난 그렇게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현장에 갈 일 없으니까. 이 ㅈ같은 육체노동에 대한 괄시는 산업 재해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분들 덕분에 인프라가 완성이 되었으니, 이것은 무식한 애들에게 필요 이상의 '비싼 돈'을 주고 시킨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인프라를 지어주시는 고생의 대가로 돈을 드리는 것이다. 돈을 줬으니 노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했으니 그만한 대가로 지불할 수 있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허나, 대한민국은 늘 돈이 앞서 있다. '돈을 줬으니 해. 돈을 줬으니 만들어. 돈을 줬으니 굽신거려.'
산업재해는 대한민국 한켠에서 매 해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들의 삶이나 현장은 시민들이 사는 곳과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시민들에게 산업 현장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싫으면 안 하면 될 거 아냐?"
"지들이 능력이 없어서 돈 받고 위험하고 힘든 일 하면서 왜 그래?"
"사내 새끼가 험한 일 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안 그래?"
생명 경시 풍조로, 황금만능주의로, 철저하게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유지해왔던 국가는 이제 저출산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희생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일군 것은 그들인데, 그들은 대한민국에 존재치 않는 사람들이다. 돈은 귀하고, 사람은 귀하지 않다. 말로만 사람이 없다고 하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은 이들만 산업 현장에서 갈리고 있다. 이후에 이 나라의 산업 현장은 누가 이끌 것인가.
험한 일, 위험한 일은 험하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거 다 돈 들어가니까, 그냥 사람으로 대충 때우다가 사건 터지면 쉬쉬하며 덮는 거지.
산업 재해는 해마다 터졌고, 이젠 당연한 연례행사처럼 여겨진다.
산업 재해를 덮으려는 시도는 매번 있었지만,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쉬이 잊혔으며, 시스템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수많은 학생들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서 기술과 산업에 대해 유리되어 자랐고, 남자라는 이유로 험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을 당연시했으며, 육체 노동자의 목숨보다 돈을 우선시한 결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산업현장의 재해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고, 시민들과 관련 없는 먼 나라의 노동자 이야기일 뿐이다. 앞서 말한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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