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단 하나뿐이기에 존엄하다고 배운다.
우린 '너를 사랑하라', '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넌 유일한 사람이다', '넌 사랑스럽다'와 같은 말들을 듣고 자란다. 아이들은 확실히 귀엽고, 사랑해주어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어른이 돼서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내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하곤 한다. 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기에 모두와 동일하게 존엄하며, 존중받아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존중하는듯한 태도를 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만 여기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로 몰아감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든다.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인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세상은 도덕적으로 돌아가야만 하기에, 소시오패스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배척해야만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도덕적이지 못하고, 인간은 존엄하지 않으며, 인간을 도구처럼 쓰는 사람은 널렸고, 그런 이들은 승승장구한다. 부정부패는 어디서든지 존재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현실은 도덕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목적과 그에 맞는 과정들 - 제도와 법, 시스템, 각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돌아갈 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 선이나 절대적 악은 없다.
우린 늘 강조한다.
인권이라는 것은 마땅히 지켜져야만 할 천부적 권리이며 절대적인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 인권이라는 개념을 밑바탕으로 그 권리를 확장시켜 나간다. 목숨을 보호받을 권리와 같은 가장 최소한의 것부터 인간답게 살 권리 - 복지, 환경 등등까지. 그러나 이 권리는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쟁취한 것이며,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이 인권은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있는, 스스로가 지켜야만 할 권리다. 이것은 '절대적 선'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빼앗기지 말아야 할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이다. 도덕적 정당성이 아니라 언제든지 빼앗길 수도 있는 무형의 자산 같은 거란 소리다.
현실 속에서 세상은 절대로 선과 악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인간 역시 존엄하지도 않다.
인간은 입장에 따라서 언제든지 그 처우가 달라질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러니 나는 '존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인드는 내려놓는 것이 좋다. 겉으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고귀한 존재라 말하지만, 절대 모두가 그렇게 취급되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중받을만한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가치의 증명이다. 물론 이 가치는 저마다의 타인의 기준 - 혹은 그 사회에서 존중받고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억지로 맞춰야 하는 것이긴 하다. 본인 스스로가 이러한 가치에 관심도 없고, 이 가치가 무가치라고 여긴다면 굳이 목 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항상 존중받을 거라는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치 해외에 나가면 경계받는 이방인처럼 말이다.
인간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당신도 나도. 63억명의 인구가 있다면, 63억 개의 삶이 있다는 것처럼 당신이나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은 목적과 수단에 의한 타인의 특정한 한 부분만을 필요로 하고, 그 외의 부분은 필요치 않기에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책에서만 배워오던 존엄성, 존귀한 존재와 같은 인간은 현실에 없다. 현실 속에서 인간은 대체 가능이냐 대체 불가능이냐로 나뉠 뿐이다. 나의 이 능력들이 누군가에겐 대체 가능한 것이고, 누군가에겐 대체 불가능한 것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있으나 없으나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고, 세상은 필요에 의해 나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인간은 모두 존귀하고, 모두 존중받아야만 해. 넌 정말 소중한 존재고, 사랑받아야 해.'와 같은 당위적 성격을 지닌 말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이상들이 현실에 내려오는 순간 깨져나가는 것을 우린 수없이 봐왔고, 수없이 겪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생각의 끝은 현실이어야 한다.
p.s
물론 그렇다고 이런 말들이 다 무의미한 것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변해가야할 지표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스스로도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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