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기생충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6. 25. 14:38

기생충

감독 : 봉준호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2019. 5. 30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단편 드라마 보듯이 가볍게 볼 수도 있고, 좀 더 무겁게 볼 수도 있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취향을 떠나서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층이 넓다. 상업성과 시사성 두 마리 다 잡은 셈이다. 물론 통쾌한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 영화가 안 맞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가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빈부격차'에 대해 다루면서도, 기존에 그것을 다루던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게 접근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선악구도를 따오거나, 분명한 대립구도를 가져와서 영화를 전개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악구도나 대립구도가 없다.

단지 이 영화는 보여줄 뿐이다.
판단은 오로지 관객들에게 맡긴 채, 돈이 있는 사람의 생활과 돈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대비시켜서 보여준다. 묵묵하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얽히게 되는 그 순간을 그려나간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지니고 영화관을 나오게 된다. 과거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본 후 느껴졌던 분노나 반감, 카타르시스 대신, 찝찝함이나 불쾌감 혹은 블랙코미디의 씁쓸함, 드라마의 재미 등 묘~한 느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스포 주의>

잔디가 깔린 넓은 지상가옥과 단칸 지하방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게 된 지상가옥은 대표적으로 부자를 상징하고, 주인공이 사는 지하방은 대표적으로 빈자를 상징한다. 사는 곳을 대비시킴으로써 빈부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대비효과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절정에 달하게 된다. 폭우에도 안전하게? 잔디밭에서 텐트를 치고 노는 아이 그리고 조용한 유리문 뒤로 소파에서 정사를 나누는 부부들의 편안함 밤과는 다르게 주인공의 가족들은 역류하는 변기를 틀어막고, 감전의 위험을 무릎쓰고 창문을 닫는 등의 사투를 벌인다.

 

냄새와 선(line) - 냄새가 선을 넘더라고
영화에서 동익(이선균)은 끊임없이 냄새 타령을 한다. "어디선가 냄새나지 않아?", "그 기사 아저씨(기택-송강호) 말이야, 냄새가 좀 나더라고. 그 어디였더라, 분명 맡아본 냄새였는데?", "그 아저씨 선을 넘을락 말락하는데, 선을 안 넘더라고, 근데 냄새가 선을 넘은 것 같아ㅋㅋ." 같은 대사를 하며 장난을 친다.

이 냄새는 '가난의 냄새'다. 가난을 냄새로 설정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사는 곳은 숨길 수 있다. 옷도 적당히 빨거나 대충 빌려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몸에 밴 냄새는 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취를 뺄 수는 있지만, 이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요한다. 이 체취는 태어나 자란 환경이 자연스럽게 쌓여 있는 것이다.

동익은 이러한 냄새를 끝없이 맡고, 표정을 찡그리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는다. 점잖게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여유롭게 자라온 그에겐 그것이 예의이자, 일종의 여유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부인에게만 한 마디 한다. "냄새가 선을 넘더라고". 그에게 기택(송강호)의 냄새는 살면서 제대로 맡아본 적도 없고, 자신에게는 나서는 안 될 냄새이자, 불쾌한 냄새인 것이다. 그것을 그는 저 대사를 통해 내비친다.

그는 또한 끝없이 선(line)을 강조한다. 그는 부자치곤(?) 얌전하고, 정중하며, 예의 바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부에 의해 쌓여진 일종의 가면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선을 넘지 않는 사람에 한해서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선을 넘으면 단칼에 잘라버리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 사실 이것은 부자만의 특징(?)이 아니다. 원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에 어느 정도 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선을 넘게 되는 순간, 싸우거나, 소리치거나, 냉혹하게 변한다. 이것을 동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가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익 역시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선은 '그가 정한다'는 의미에서 일방적인 선이며, 폭력적인 선이기도 하다. 그는 고용인으로서 피고용에게 일종의 선을 긋는다. 동익은 늘 선을 정하는 입장이며, 피고용인은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기 위해 조심해야만 한다.

※ 하지만 이렇게 선을 정하는 것 역시도 부자만의 특징(?)이 아니다. 동익은 선을 정하는 입장에서 영화내내 끝없이 타인이 자신의 선을 넘는가에 집중했지만, 정작 본인이 기택이 가지고 있는 선을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기택 역시 동익은 좋은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 이런 부자가 없다고 칭찬을 했으나, 자신의 선을 넘는 순간, 그는 돌변한다.

 

수석(壽石)과 기우(최우식), 그리고 기정(박소담)
수석은 가난한 기우에겐 일종의 기회이자, 희망이다. 기우는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수석을 감싸안고 집을 빠져나온다. 그는 동익의 집에 갈 때도 수석을 들고 간다. 부자를 갈망하던 기우는 낯선 파티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 오히려 낯선 부자들의 파티 모습에 수석을 더 꽉 껴안고 다혜(정지소)를 향해 떨리듯 묻는다. "나는 어울리는 거 같아?" 라고. 그는 내려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더 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고. 그는 근세(박명훈)에게 이 행운의 상징인 수석을 전해주려는 듯 지하실로 내려간다. 

이 장면이 찍힌 장소의 높낮이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고층일수록 밑을 내려다보기에 이는 상승된 계급을 뜻하며, 그와 반대로 밑으로 내려갈수록 - 지하로 들어가는 것은 계급이 바닥을 찍고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우는 2층에서 부자둘의 파티를 바라본다. 수석을 통해 이 자리까지 왔으나 그것이 몸에 맞지 않는 듯 두려워한다. 파티에 참석자들을 내려다 볼 위치까지 올라가본 그는 막상 두려워져서 내려가야만 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있었던 그 계급의 위치에서 살고 있는 근세에게도 이 수석을 줌으로써 그가 그곳을 벗어나길 바란다. 자신이 이 수석을 받고서 일이 다 잘 풀렸듯이, 근세 역시 이 수석을 갖게 된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거라 믿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우는 수석으로 머리를 크게 다치고, 기정은 칼에 맞아 죽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근세는 기정이에게 칼을 휘둘렀을까. 정작 문광을 죽게 만든 것은 충숙(장혜진)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바로 기정이가 윤기사(박근록)와 문광(이정은)을 해고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근세는 절대 동익을 향해 달라들지 않는다. 동익은 집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충숙도 고용해주는 자상한 부자이기 때문이다.

동익은 그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에게 해를 끼친 것은, 밥그릇을 뺏은 것은, 기정이와 기우다. 동익은 잘못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돈 벌었을 뿐이다. 마치 기우나 충숙처럼. 여느 영화나 여느 주장처럼 착취를 통한 부자와 빈자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밥그릇을 가진 동익과 그 밥그릇의 일부 귀퉁이를 두고 다투는 문광, 윤기사, 기우의 가족들은 빈부의 격차의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근세의 칼은 기정을 향한다. 넓은 밥그릇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았던 동익이었지만, 살인사건 앞에서 동익의 본성은 드러난다. 동익은 기택이 '같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말하는 것을 내심 불쾌하게 여겼다. 단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넓은 마음을 가진 자로서. 결국 동익은 아들의 생일 파티 때, 기택을 향해 '돈 벌러 왔지 않냐'며 불쾌함을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선생님이라고 깎듯하게 모시던 기정이 칼을 맞았을 때 그대로 내버려둔 채, 피고용인인 기택을 향해 열쇠를 가져오라 소리친다. (살인범이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 자신의 가족부터 챙기는 것은 또 당연해보이기도 하다.) 동익의 그러한 행동들에 일련의 이질감을 느끼던 기택은 동익이 자신의 선을 넘게 된 순간, 근세의 칼을 뺏어 동익을 찌른다.

결국 빈부격차는 빈자들의 칼싸움을 만들고, 그 칼은 다시 부자를 향하게 되는 결말이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노숙인의 묻지마 범죄'로 끝난다.
근세도, 문광도, 기우네 가족도, 동익의 가족도.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삶들은 칼날로 변해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다. 빈부격차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이 영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기우와 기정의 행위는 범죄가 맞다. 그런 의미로 필자는 리뷰 포스터를 기우로 정햇다. 그 처절함이 보이는 것 같아서)

폭우로 인해 집이 물에 잠겨서 난리난 기택의 사정을 모른 채, 폭우가 한바탕 쏟아진 덕분에 날씨가 좋다고 말하는 연교(조여정)가 과연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단지 연교나
 동익에겐, 물난리는
 다른 세상이야기였을 뿐이다. 같은 집에 살지만, 다른 세상, 다른 삶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이제 관객들에게 다시 묻는듯 하다.
영화를 보는 너희는 과연 어느 쪽이냐고. 스크린 너머의 현실을 영화로서, 다른 세상을 보듯이 바라보는 것이 마치 동익과 같지 않냐고 되묻는다.

젠가 이 집을 사는 자신 모습을 꿈꾸던 기우를 생각하며 리뷰를 마친다.

p.s
영화 리뷰와 관련하여, 필자가 과거에 쓴 
<빈부격차가 위험한 이유>와 <가난이 패션인가-각자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밖에 없는> 글도 봐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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