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The discovery, 2017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2. 25. 07:29

The discovery, 2017
감독 : 찰리 맥도웰
장르 : SF, 로맨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영화.

종착역을 알 수 없는 기찻길을 달려가고 있는 기차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하며, 순간순간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현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현재가 바로 앞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현재와 동떨어진, 멀리 있는 미래는 두려워하고, 궁금해한다. 어차피 그것이 '미래'라는 점에서 1초 앞 미래든, 7일 앞 미래든 동일한데 말이다. 우리는 기찻길을 달려가고 있는 이 기차가 어떤 종착역에 다다를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종착역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알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인간이 죽어서 사후세계를 간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사후세계가 어떤 곳인가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차가 어떤 종착역으로 가는지는 몰라도, 언젠가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그 종착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고 탐구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사후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이 영화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살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후세계가 어떤지 알지 못하는데, 사후세계를 가기 위해 자살할 수 있을까? 그 사후세계가 지옥뿐이라면? 필자라면 사후세계가 어떤지 알아본 다음에 자살을 시도할 것 같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과연 위안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내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 내세가 사람마다 다르면 어쩔 것인가?

(스포주의)

'사후세계'에 관하여 이 영화는 나름의 답을 내려놓고 있다.
그것이 정답이든, 오답이든 간에 말이다. 그것은 마치 평행우주와도 같은 이론이며, 니체의 영원회귀같은, 불교의 윤회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셋 중 어느 것도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후세계는 '후회되는 지점에서 끝없이 삶이 반복'된다. 그 후회가 사라지기 전까지. 마치 평행우주이론처럼 매 순간의 선택에 따른 다른 차원이 존재하고, 그 차원을 살아가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차원에서의 자신은 어떤 이유에서든 죽을 것이고, 그렇게 죽는 순간 다른 차원의 나로서 존재의식이 옮겨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른 차원의 나는 '또 다른 차원의, 죽었던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니,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심오한 질문이다.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A라는 사람이 죽어서 윤회를 하게 되었을 때, A라는 전생에 대하여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는다면, 과연 그 사람은 A라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친구들과 다른 관계를 맺으며, A라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 A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혹은 윤회가 아니라 평행우주이론처럼 다른 차원의 나라면, 과연 그 다른 차원의 나는 정말 나인가?

이 영화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묻는 영화가 아니다. '사후세계'를 탐구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삶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니, 사후세계와 삶과 존재의 의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매 순간의 선택이 있고, '그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의 순간'을 다시 반복하니, 이는 전생에서 후생으로 넘어가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윤회와는 엄연히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분기점으로 분화되는, 무수히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와도 같은 평행우주이론과도 다르다. 결국 끝없이 반복하지만, 선택에 따른 다른 결과(후회하지 않는 결과)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맞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만약 후회되는 지점에서 삶이 다시 반복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벼이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언제든지 삶을 반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후회는 늘 겪은 후에야 일어나는 법이니, 다시 선택하기 위해서 머뭇거림 없이 자살하는 것이다. 우리가 '후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그 일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며, 1회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후회하게 되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삶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후회되는 선택을 했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린 삶이 반복된다면, 과연 우리는 그 후회되는 선택을 다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후회되는 선택을 다시하고, 또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그대로 고착화된 채로 영원히 반복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니체의 영원회귀다.

삶이라는 것은 1회성이기에 무겁고, 선택과 후회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사후세계가 후회되는 선택을 하기 전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후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끝없이 삶을 반복할 것이고, 기억하지 못한 채 반복하므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았을 때, 이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윤회사상으로 치자면 열반에 든다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대게 이런 종류의 영화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밝혀지지 않는 것들 - 심오한 주제는 '심오하기에' 심오한 주제인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항상 관객들에게 맡겨둔 채 두루뭉술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감하게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답을 내려 놓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사실 답을 찾는 과정(?)이 뭔가 논리적으로 펼쳐놓은 것은 아니다. 주제에 대한 답을 스토리텔링에 담아 조금씩 풀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추천.
생갈할꺼리를 즐기는 사람에게 추천.
액션, SF 특유의 흥미로움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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