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주말에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늦어졌네요. 2주 만의 편지입니다.
최근에 벚꽃이 활짝 폈는데 벚꽃 구경은 좀 다녀오셨나요? 날씨도 좋아서 벚꽃 구경 가기에 무척 좋았는데 말이지요. 전 바빠서 벚꽃 구경을 가지 못 했답니다. 대신 길을 오가며 길가에 핀 벚꽃들을 구경했답니다. 비록 직접적인 목적이 벚꽃 구경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길을 오가며 보는 것 역시 벚꽃 구경이긴 하지요. 알게 모르게 어느새 길가에 벚꽃나무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누가 옮겨 심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요. 덕분에 눈호강 좀 했어요. 벚꽃 구경은 다음에 볼 기회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벚꽃이 생각보다 빠르게 피고 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긴 해요. 1년에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안 되는데, 바쁜 일정과 겹치면 그 해는 넘겨야 하니까요.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다음에, 또 다음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곤 하지요. 분명 10대, 20대, 30대에 보는 꽃구경의 느낌은 다를 텐데 말이에요.
혹시 '운빨망겜'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다양한 조합이나 아군의 상태, 적군이 상태, 성장의 정도, 현재 상황, 그리고 환경 등등 여러 가지 변수를 지닌 채 서로 경쟁하는 전투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에요. 순수하게 1:1로 내 실력으로만 싸운다면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을 텐데, 5:5로 팀을 이루어 싸우게 된다면 변명할 거리가 많아지지요. '조합이 별로라서', '팀원 실력이 별로라서', '내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등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들은 많아서 핑계 댈 것은 많거든요.
이것에 대해 <중년 게이머 김실장>이라는 유튜버가 언급한 게 있어요. 유튜브 제목은 <실력 갓겜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영상인데, 내용이 참으로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답니다. '어떤 경쟁 게임인데, 승리를 만드는 조건이 완벽하게 실력에만 의존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원하지만) 완벽하게 실력에만 의존한다면, 실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할 수 없게 된다.' , '실력으로 게임이 서비스가 오래되려면 기본적으로 실력이라는 명확한 조건 외에 변수적인 영향이 있어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계속 게임을 하지.'라고 말이지요.
정말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경쟁게임에서 운빨 망겜, 운빨 망겜이라고 욕하지만, 계속 게임을 계속 하지요. 기본적으로 이기려고 게임을 하고, 이기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요. 실력이 조금 미진하더라고 혹시 모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우린 그 가능성들을 보면서 경쟁을 시작하지요. 이기려고요. 저는 그 말들이 우리의 인생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인생도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져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요. 어릴 때 어떻게 자랐느냐, 어떤 친구를 사귀었느냐,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 어떤 기회를 잡았느냐, 어떤 선택을 했느냐 등등 엄청나게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진행되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을 때 가봐야 알 수 있어요. 성공해서 살고 있다가 망하기도 하고, 칠전팔기 끝에 성공하기도 하지요. 물론 후자는 아주아주 드문 경우예요. 그래서 다들 대단하다고 말하고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불안감을 가져다 주지만, 반대로 그 가능성은 우리가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인생은 노력이나 재능도 중요하지만 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오래전에 요행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도 이야기했지만, 요행이라는 것이 한 번쯤은 있어야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인생이 그래요. 어떤 이들은 인생 난이도가 정말 쉽지요. 외모나 재력, 재능을 물려받아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인생 난이도가 하드코어예요. 하드코어 인생을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는데, 매번 어떤 일이 터져서 발목을 잡기도 하지요. 그분들에게 '앞으로 인생은 어찌 될지 몰라. 결괏값은 알 수 없으니까, 열심히 살자.'라고 말할 순 없어요. 현재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공감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지요. 다만 힘내라고 격려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우린 우리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이게 어렵지만요.)
주어진 대로 그 자리에서 그냥 묵묵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은 내버려두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 - 노오력만 이루어내면서 말이지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요인들을 가지고 좌절하고, 불평한다 한들 우리네 인생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자포자기 심정으로 더 안 좋게 흐를 가능성이 높지요. 그냥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더 나아질 거라 믿고, 긍정하면서 살아가야만 해요.
포기할 순 없어요.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할 사건도 터질 거고, 사고도 당할 거예요. 반대로 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노력이 보상받는 경우도 있겠지요. 때때로 찾아오는 요행이나 운에 기뻐하며, 때때론 고난을 이겨가며 우린 우리의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도록 해요. 가능성을 믿으면서요.
제가 긍정에의 편지라 이름을 짓은 이유랍니다.
p.s
다르게 보면 희망고문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희망을 갖는 것이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 집중하는 거예요. 희망을 갖는 것이 인생을 좀 더 낫게 만들어줄 테니까요.
p.s 2
우린 공정과 상식을 외쳐요. 공평하게 경쟁해서, 노력해서 결과가 나와야만 한다고 외치지요. 공평함과 공정함은 분명 중요해요.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지요. 하지만 재능은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노력으로 재능을 커버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지요. 이렇게 노력과 재능이 명확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요소들 - 운이나 환경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 것이 이젠 '오직 실력으로만 경쟁하자.'가 되어 버리고 있어요. 일종의 실력 만능주의지요. 그리고 그 결과, 과거 핏줄로 인생을 결정짓던 중세시대나 고대시대처럼 새로운 신분제가 나타날 거에요. 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실력 만능 주의를 외치는 것은 실력 신분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실력 신분제가 확립된다면, 우리 사회는 소수의 유능한 사람을 빼곤 모두 자살로 귀결될 거예요. 그리고 실력에 따른 차별 - 보상이 아닌 인격적 모독이나 이런 것들이 당연시 되겠지요. 대한민국의 저출산이 그렇게 흘러가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경쟁이 치열해서 고인물들을 빼고 다들 게임을 접는 거예요. 하지만 오해하진 마세요. 그렇다고 공정한 경쟁을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뭐든지 밸런스가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