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냥저냥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10. 16. 18:35

오랜만입니다.
편지의 첫 마디를 뭐라 해야 할 지 고민돼서 의례적인 말로 시작해봅니다. 지난 편지를 쓴 지 3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듯 하지만 일단은 오랜만이다고 인사를 건네봅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요. 사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날은 주중이었지만, 이렇게 주말에서야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쓸 때, 펜을 든 날과 펜을 내려놓는 날이 다르게 되면 이야기를 건넬 때 날씨가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분명 펜을 든 날은 날씨가 무척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는데. 그럼 어째서 그 날 편지를 마무리 짓지 못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순전히 저의 게으름 탓입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딱 그런 경우입니다. 분명 아무 글이나 적고 싶어 펜을 들었는데, 쓰다가 귀찮아져서, 혹은 다른 걸 하느라 펜을 내려놓지요. 사는데 치중하다보니 갈수록 그 외의 것들엔 점차 무관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에 대한 것은 이런들 저런들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고, 당장 내 삶의 계획이나 미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만 보고 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20년 뒤, 30년 뒤 지구 온난화는 내 알 바 아니고, 환경이야 파괴되든 말든 지금 당장 내 이익이 늘어나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일까요. 비유를 든 것이지만, 누군가는 이런 내게 이기적이라 욕할 것 입니다.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닙니다. 온난화로 인해 모두가 망조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알지만, 그거야 더 많이 잃을 사람들-아쉬운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이는 마치 오래전 '빈부 격차가 위험한 이유'라는 글에서 쓴 내용과 유사합니다. 여유로운 자들은 후손과 환경과 복지에 대해 이야기 할 테지만, 지금 당장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고. 그리고 그들이 그런 것은 악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던 글 말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냥 먹고 사는데 치중하다 보면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 아니면 무관심해져간다는 것 입니다. 변해가는 내 자신을 문득 느낄 때면, 왜 어른들이 그리 세상사에 무심해져 가는지 이해도 되면서, 나 역시 늙어가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곤 합니다.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최근에 날씨가 무척 좋아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냥 노래를 틀어놓고 국도를 드라이브 하는 것이지요. 몇 시간이고 길을 따라 가다 힘들 때면 잠깐씩 차를 세워놓고 풍경도 보고 간식도 먹으면서 그렇게 말이죠. 시끄러운 고속도로 보단 조용하고 한적한 길을 따라 쭉 가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제주도로 올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겐 정해진 일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에 매여 떠나질 못합니다. 떠나고 싶다고 바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흔지 않지요.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더욱.

그러고 보면 오래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친구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여행 갔다고 하면 보통 1박 2일로 어디 먼 곳을 갔다온 느낌이지만, 그냥 당일치기로 근처 해안도로를 구경갔다 온 것이 다입니다. 수능이 끝난 직후 운전면허를 땄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요. 좋아하던 여자애가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였거든요. "걔가 바다보고 싶어하던데 그럼 구경시켜 줄 수 있어?" 친구가 물었거든요. 호기롭게 그럴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저도 부모님 따라 한번 가본게 다였으니까요. 무사히 도착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초행길 운전초보자가 친구 2명을 차에 태우고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가다니요. ....미안할 따름입니다. 요즘도 종종 운전면허를 갓 취득한 새내기들이 차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곤 합니다. 모두 안전 운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신 차를 샀습니다. car가 아니고 tea입니다. 전 돈이 없거든요. 평소 마시던 차에 비해 가격대가 있었지만, 감성비를 낸다 생각하고 구매했습니다. 고오급차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자사호와 함께 좋은 차를 구비해놓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취미도 없는 집돌이인 나에게 다도는 꽤 좋은 취미가 될 듯 합니다. 누군가는 한량의 신선놀음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취미이기도 합니다.

훗날, 좋은 차를 한 잔 대접해드릴 수 있는 집을 꿈꾸며 편지를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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