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겨울을 생각하며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11. 3. 01:50

입동.

겨울이 시작되는 날을 가리키는 말.

나는 겨울을 시작하는 날, 겨울로 진입하는 시기라는 뜻에서 입동(入冬)이라 여겼는데, 입동은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를 써서 입동(立冬)으로 쓴다. 의미상으론 설 립(立)이 맞다. 여튼간에 11월 첫 주말이 지나고 나면, 조만간 입동이 시작된다.

예년과는 다르게 춥지 않은 기후가 입동을 무색하게 하지만, 대신 미세먼지가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썩 달갑지 않은 시작이다. 분명 내 기억 속엔 겨울은 추웠고, 바람도 많이 불었고, 공기도 맑은 이미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겨울은 뿌연 느낌을 가지게 됐다. 아니면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절은 연속적인 날씨를 부분으로 나눈 것에 불과해서 소리소문없이 다가온다.
봄이 왔다 싶으면 금새 더워져서 여름이 오고, 가을은 온 지도 모르게 시작돼서 어느 순간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래도 과거엔 계절만의 특색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특색이 사라져서 계절을 나누는 것은 형식적으로 나누는데 그칠 뿐 기후는 그냥 연속선상의 하나가 되어가는듯 하다.

그럼에도 사계절이 뚜렷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입추나 입동 온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기후가 어느 장소/어느 시기에 고정되어 존재해서 겨울로 통하는 입구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다음 주가 지나가면, 그 사람은 겨울의 입구를 통과하겠지.

그냥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 해서 구분지으려는 내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겨울 입구 앞에 서성이는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차갑고, 시려운 계절을 맞이할 걱정에 근심이 가득한 모습일까 아니면 연말의 축제 분위기와 모닥불처럼 피어오를 따뜻함에 설렘 가득한 모습일까. 계절만의 특색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가진 자들의 특권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다가올 겨울 앞에서 아직도 내가 설렌다는 것은 나도 아직은 배부르다는 소리일 것이다.

난 온기를 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겨울의 그 차가움이 좋았다.
비완 다르게 눈이 내리는 것이 조용한 것도 좋았고, 자고 일어나며 온 세상 천지를 눈이 덮고 있는 것도 좋았다. 낮이 짧아지는 것은 싫었지만, 긴긴 밤이 좋았다. 그리고 연말이 다가오면 틀어주던 '나홀로 집에'라는 영화에 본 그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가 좋았다. 비록 우리집은 연말 파티나,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것을 챙길 생각 못하는 무뚝뚝한 집안이었지만, 그냥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분위기가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겨울을 좋아한다. 

미세먼지라는 단어로 뿌옇게 변해가는 나의 겨울 이미지가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그 겨울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