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각자의 삶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1. 10. 07:30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는 영원히 평행선인 셈이다.

세상으로부터의 부정을 먼저 배운 사람과 세상으로부터의 긍정을 먼저 배운 사람의 관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은 경험으로, 환경으로, 습관으로 무의식에 남을 것이고,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는 평행선인 것이다.

그저 각자의 삶 속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저 그 뿐이다.

가난은 정신과 몸을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틀리게 만든다.

하지만 부유함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게 만든다.

이것은 부를 떠나서 외모, 매력, 능력, 계층, 계급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가난을 이해할 수 없고, 미인은 못 생긴 사람을 이해할 수 없으며, 천재는 범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서로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 맞춰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저 태어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했다 믿으며 서로를 향해 비난하고, 평가를 내리고, 합리화하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 안에서 합의나 대화니, 정치니 사회니, 도덕이니 뭐니 유리된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피치 못해 뒤따라 붙을 뿐이다. 아마 인간의 삶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채로 온전히 그 삶 자체를 누릴 수 있다면 어떠한 이들도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삶뿐.
그저 각자의 삶 속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는 영원히 평행선인 셈이다.

p.s
자원은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모이지 않는다.
마치 가난한 사람과 사회를 위한다는 학문들이 제반 비용으로 인해 부자들의 전유물로 되어 가는 모순처럼.

그것은 삶이고, 현상이다.
도덕이니 뭐니 그런 가치판단은 뒤따라온 관념일 뿐이다.

우리에겐 서로가 서로에게 유리된 채 자신의 생각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만 남아있다.

p.s 2
사회적 연대는 끝났다.
사회적 틀을 보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만 있다.
단지 각자의 삶에서 그리는 그림들이 서로 충돌하며 이루어지는 것일뿐.

내 삶의 이득을 위해.

서로 자신의 위치에 맞는 무리를 찾아 어울리고, 구분짓고, 거주구역 조차도 나눈다. 그것이 내 삶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니까. 나의 무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을 위해 무리에 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