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치와 의미, 미련과 정리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8. 26. 20:40

오랜만이에요.

덮네요.
점차 가을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낮동안은 더워요. 서늘해진 아침저녁도 조만간 추워지겠지요. 낮과 밤이 이렇게 기온차가 나는 걸 보면 가을이 오긴 왔나보네요. 환절기인 것 같은데, 건강 관리에 신경쓰길 바라요. 이런 때 일수록 비염이나 감기가 쉽사리 찾아오니까요.

꼭 시기를 맞춰가며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게 돼요. 사실 어제 글을 썼어요. 다만 글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공개로 돌렸지만요. 하지만 그 글의 일부를 이 편지에 잠깐 풀어 놓으려고 하는데, 그 전에 다른 이야기를 잠깐 해볼게요.

오늘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그냥, 모든 것을요. 며칠 전에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저의 생각이 담긴 자잘한 기록들부터 어릴 때 꿈꿔왔던 사소한 꿈들, 그리고 언젠가는 이루어야겠다고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들과 관계까지도요. 딴에는 명언이랍시고 생각해놓은 단어나 문구들도 정리하려고 했어요. 그 문구 중에는 선택과 집중이 있네요.

그래요. 전 욕심이 많아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 주제에 과감하게 인생을 걸고 배팅해볼 용기도, 노력도, 의지도 부족한데, 욕심만 많았지요. 뭐, 여튼 그런 이유로 내 지난 모든 것들을 정리하려고 했어요. 마치 인생을 리셋이라도 하는 듯이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쭉 이어지는 상태기 때문에 끊어낼 수 없네요. 하물며 관계는 더욱 그렇구요. 결국 저의 의지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의미없음, 정리에 대한 생각들로 인해서 어제 가치와 의미에 대해 글을 썼어요.
그 글은 '과연 나에게 이것저것, 모든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어떤 가치가 남아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요. 가치있다는 것은 의미있음을 뜻하고, 이러한 자신에 대한 의미의 부여는 오직 개개인의 생각, 추구하는 바에 의해 달라져요. 그러나 이러한 의미 부여가 절대적인 자신만의 것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은 사회적-타자들의 생각/시선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제가 아무리 돌조각을 예쁘다고 하고 이것에 의미부여를 해서 모으더라도, 타자의 눈에는 돌조각일 뿐이에요. 물론 여기서 타자가 제가 생각하는 돌조각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중요치 않죠. 그러나 내가 부여하는 의미들이 '돌조각은 최고!'가 아니라, 타자가 추구하는 것들 - 명예, 권력, 돈과 같은 거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마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요. 결국 영향을 받은셈이지요. 만약 제가 저 가치들에 대해 진정 초연해졌다면, 세상사에 대해 해탈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공통된 추구(희소성)는 결국 가치 평가를 만들어내고, 줄세우기를 만들어내며, 가치의 기준을 만들어내요. 그것은 바로 능력이지요. 내가, 나만이, 온전한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후천적으로 얻는 능력들. 그러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번듯한 직업이지요. 저는 이러한 이유에서 무능력, 가치없음이라는 저의 현실을 직시하게 됐어요.

그래서였어요.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이요. 문득 해오던 것들이, 저의 과거의 흔적들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진 것이요. 아등바등 이것저것 집착하지 않고 과감하게 다 지우고, 내려놓으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단 하나의 미련만은 버리지 못하겠더라구요.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만 높아서 타자에게 인정 받으려는 그 미련 하나만은 내려놓지 못했어요. 능력을 갖춰서 난 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그 마음만은 남더라구요. 정 내려놓을 수 없다면 성취해야만 하겠지요. 그리고 그 성취를 위해서라면 다른 것을 정리해야만 해요.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이지요.

오늘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과감해지지 못했네요. 이 편지를 쓰면서 자기반성하며 다시 굳게 다짐해봐요.

비울 거에요.
비워야만 채울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 확실한 것 하나만 채울 거에요.

그럼 건강 잘 챙기세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 말 없음, 지워내는 연습  (0) 2019.09.30
가을이네요  (0) 2019.09.15
비공개된 글, 그리고 D-1291 편지  (0) 2019.08.18
입추, 이모저모 편지  (0) 2019.08.09
만남- 멀어져버린 간극, 공유점이 사라진 삶  (0) 2019.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