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우리집은 상가였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7. 11. 28. 09:18

우리집은 상가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늘 상가와 함께 지내왔다.

유리문으로 된 가게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가족이 자고 먹고 생활하는 곳이 있었다. 어쩌다 상가가 헐리게 되어 이사하게 된 곳 역시도 상가와 붙어 있는 집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30년이라는 세월동안, 일하는 장소이자, 생활하는 장소에서 함께 지냈다. 삶이 생업이었고, 생업이 바로 삶이었다. 우리 가족은 늘 가게와 함께 였다.


지난 세월이 날 익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도로가에 있는 주택 겸 상가들이 좋다. 아침에는 일하러 출근했다가 저녁에는 퇴근해버리고 마는, 그런 필요에 의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삶 자체인 곳이 좋다. 삶과 일이 분리되어 있지 않는, 일 그 자체가 삶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그런 삶이 좋은 것이다. 상가 앞으로 365일 내내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조금은 시끄러울지라도, 그것이야 말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징표인 것이다.


오늘은 문득 아침 일찍 주택가를 걸어보았다.

상가가 없는, 잠자리만 머무는 주택가를 걸었다. 도로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주택가는 주택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냥 문득 궁금했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주택가는 사람 사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주택가였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있었으면 좀 더 사람이 살아가는 주택가라 느꼈을 법도 한데, 아이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도시에서 살아가는 성인들,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을 반복하는 그런 현대적 도시인들만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주택가 자체가 스러져가는 느낌이 물씬 베어 있었다.


 주택가는 바쁘게 살아가는 회사원들이 잠깐의 잠과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곳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 곳에 사는 회사원들은 이 곳과는 다른 일하는 곳에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 주택가는 죽어있는 주택가였고, 죽어가는 주택가였다.


다시 돌아올 때쯤이 되서야, 하나둘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추운 날씨 탓에 몸을 꽁꽁 싸맨 채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로 출근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향하는 그 곳에서 삶의 활동을 할 것이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이 곳에서 휴식만을 취할 것이다. 


차라리 요즘 흔히들 광고하는 도심지의 아파트였다면, 좀 더 사람 사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도 뭔가 단절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출근 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학교에 가는 아이들, 그리고 퇴근하는 어른들과 해질녘 쯤에 각자의 집으로 쏙 들어가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상가에서 살았던 때와는 달리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이 죽어버린 주택가와는 달리 매일 일정 시간대에는 일시적인 생기가 돌 것이다.


난 죽어버린, 스러져가는 주택가도 싫고, 단절된 느낌의 아파트 단지도 싫다.

사람의 활동성이 묻어나는 곳.

사람들이 매일 걸어다니고, 자동차가 지나다니며, 매일 소음이 발생하지만, 그 안에는 활동하는 사람이 있고, 교류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상가가 난 좋다.


사람과 사람의 활동이 없으면, 삶의 증거를 나는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