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곤 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나 혹은 이러한 사실들을 되새기게 될 때면 자괴감에 빠지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찮다고 여기진 않았기에 부끄럽진 않았다. 그러나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 자신이 하찮아져서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러나 그건 자격지심이 아니었다. 당신과 비교하면서 당신은 잘났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못난 놈이라 여긴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한 사람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내 부끄러움이었다.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과 함께 하려면 적어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한 사람의 몫은 해야 했으니까. 기왕이면 당신까지 함께 이끌어 갈 수 있는 커다란 사람 된다면 더 좋고.
어찌됐든 당신을 생각하면 초라해지는 것이 나였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자격이라기 보단 무릇 사회인이라면 가져야할 최소한의 자격과도 같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자격애서 내가 미달인 것을 절감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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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는 별개로, 살아있으니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었기에 옆자리를 비워둔 채로 살아가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그러나 외로움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떠넘기는 것이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제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라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외롭다고 느끼는 것처럼 나에게도 외로움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한 때는 이 강렬한 느낌에 이끌려 내 사람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내 사람을 찾아다녔던 시절도 있지만, 그건 정말 한 때의 시절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이 외로움을 잘 떠넘길 줄 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떠넘길 줄 아는 것이다. 다른 매채에, 다른 영상에, 다른 일들에.
남과 비교하는 것이 불행을 떠올리게 하는 시작점이 되듯이 외로움을 탐닉하는 것은 우울감의 시작점이 되기 쉬웠다. 그래서 난 예전처럼 외로움을 들여보질 않는다. 그냥 자연스레 다른 일로, 다른 매체로, 다른 무언가로 외로움을 떠넘겨 보내며 잊혀지길 기다릴 뿐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
늘 새롭게 그것을 그저 떠넘기며 지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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