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아멜리에

어둠속검은고양이 2022. 4. 30. 19:59

아멜리에

감독: 장 피에르 주네
개봉일: 2001. 10. 19
재개봉일: 2021. 12. 15
장르 : 코미디, 로맨스, 멜로


영화를 처음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게 왜 로맨스 코미디지?'였지만, 다 보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이래서 로맨틱 코미디구나.'였다.

더불어 이 영화는 호불호가 매우 갈릴 거란 생각도 들었다. 아마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잔잔한 전개 방식과 나래이션이 있는 프랑스 영화 - 익숙하지 않음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어로 진행되는 해외 영화에 익숙한 탓에 불어로 진행되는 것이 익숙지 않은데, 나래이션까지 있으니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데, 전개 방식마저도 관객들을 확 휘어잡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진행되는 방식이라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상영이 되는 몇 분만에 호불호가 바로 갈릴 것 같은 영화다.

이 영화의 첫 부분을 보면 대체 이 영화가 뭘 말하려는 건지 아리송하다. 필자 역시 '명작이라니까. 뭔가 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좀 더 지켜보았고, 결론적으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영화 아멜리에는 다른 로맨스 코미디 영화처럼 뭔가 달달하면서 깨알 같은 웃음거리를 주는 연애 과정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코미디지만, 연인 사이의 어떠한 관계보다 주인공인 아멜리에라는 인물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사람의 관계에 대해 본질을 담고 있다. 물론 '이래서 로맨틱 코미디구나.'라는 생각이 든 걸 보면 로맨틱 코미디가 맞긴 하다.

이 영화는 주변 풍경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그러면서 아멜리에의 부모로, 아멜리에로 설명이 옮겨간다. (묘사하는 내용도 보면 여느 영화와 다르다. 예술을 중시하는 프랑스 영화라 그런가?) 어떻게 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없어도 무방해 보이는 설명을 영화의 도입부에 할애한 것을 보면 감독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왜 이렇게 인물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뜬금없다? 프랑스 영화라서 그런가? 그냥 어떤 인물인지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배경 설명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쉽사리 지나쳐도 무방하다. 영화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감독이 이런 장면들을 이유 없이 넣었을 리는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은 의도가 있는 법이다. '왜 그랬는가?'의심을 하면서 보는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재미를 주고,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고립된 어린 아멜리에
이 영화를 보면 독특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이 꿈을 꾸나, 상상을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둔다. 가령 잠드는 장면을 넣는다든가, 등장인물을 향해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면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든가,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게 없다. 현실을 보고 있는 뜬금없이 아멜리에의 상상 속 친구가 현실에 나와 있다던가, 영화 속 텔레비전의 등장인물들이 아멜리에에게 말을 건다던가 그런 것이다. 독특한 설정인데, 그것은 바로 아멜리에의 정신 상태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아주 어릴 때 상상 속 친구를 만들고 논다던가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멜리에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런 모습이 종종 보인다. 물론 상상 속 친구 대신 텔레비전 속 등장인물들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런 정신 상태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고립이다. 어린 아멜리에는 '히스테릭한 어머니와 목석같은 아버지를 피해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라는 설명이 있다. 게다가 아멜리에는 심장병이 있다고 착각한 아버지로 인해 학교에 가지도 못했다. 친구와 관계도 맺지 못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친밀한 관계도 맺지 못한 아멜리에는 어릴 때부터 쭉 고립되어 왔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 마찬가지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 또한 세계로부터 고립된 인물들이다. 그녀가 사는 곳, 그녀가 다니는 일터인 카페에는 '정상적이지 못한', 고립된 인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 역시 늘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변화의 시작 그러나 여전히 두려운.
그런 아멜리에에게 뜻밖의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40년 전의 장난감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그걸 계기로 좀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낡은 집에서 카페와 집만 왔다 갔다 하던 과거와 다르게 보물상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보며 직접 사람들을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마주하고 뒤에 모르게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을 도우는 일만 할 뿐, 자신이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을 주저한다. 아멜리에가 자신이 좋아하게 된 남성(니노)을 향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멜리에는 짝사랑하던 남성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쪽지를 건네고 관심을 이끄는 행동을 하고, 그 남성의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그 앞에 나서지 못해서 자꾸만 만나는 약속을 미룬다. 그녀는 니노가 눈치채고 알아서 다가와주길 바라지만, 그녀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니노는 아멜리에가 카페 직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해서 눈치챘겠지만, 아멜리에가 아니라고 부정해버렸고, 니노는 그 말을 믿었다. 이때 아멜리에가 물처럼 녹아내리는 연출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림 그리는 노인, 레이몽 듀파엘
레이몽 듀파엘은 방에서 같은 그림만 끝없이 모사하며 살고 있다. 그 그림은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오찬>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아멜리에에게 자신이 모사한 그림 속 인물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때 그는 모든 사람의 표정을 이해했지만, 단 한 사람, 여인의 표정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여인은 다른 일행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뱃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림 속 여인이 다른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그 여인은 바로 아멜리에다. 그림 속 일행들은 저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 맺으면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지만, 단 한 명의 여인만은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아마도 듀파엘은<뱃놀이 일행의 오찬>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새겨넣었을 것이다. 그림을 모사한다는 것은 아무 생각없이 복사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 관찰한 것들을 붓질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니까. 듀파엘은 아멜리에를 통해 <뱃놀이 일행의 오찬> 속 여인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뱃놀이 일행의 오찬> 속 그녀의 표정에 대해 아멜리에에게 종종 묻곤 한다. 아멜리에는 그의 질문에 대해 그녀 자신의 입장을 투영해서 대답한다. "혼자만 좀 다른가 보죠. 어릴 때 다른 애들과 놀았던 적이 없었다던가"라든지,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요."라든지.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 등을 힘껏 밀어주기도 한다.

아멜리에는 결국 자신의 사랑을 이루어냈다.
어릴 때부터 고립되어 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고립된 아멜리에. 그녀는 세상을 향한 관계 맺음을 주저했고, 늘 회피했다. 그러나 그녀는 용기를 냈고, 짝사랑이라는 목표와 주변 인물들 덕분에 세상을 향해 관계를 맺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한 사람이 세상과 맺는 관계에 집중하면서 그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공감하는 것과는 별개다. 영화의 전개 방식이나 연출, 아멜리에라는 특수한 인물이 공감 가는 방식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관계에 대해 회피하는 사람들이 결국엔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는 모습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본질을 묻는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 평가할 수 있다. 

정말 로맨스 영화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추.
색감이나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잔잔한 영화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
호불호가 갈릴 영화.

 

p.s
영화가 잔잔하게 흘러가면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았는데, 어느 한순간에 모든 것들이 엉키고, 잘못되고, 사랑도 실패한 것을 보일 때, 아멜리에가 사랑을 붙잡는 데 성공한 장면을 보고 있자면 이래서 로맨틱 코미디구나 자연스레 수긍하게 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아멜리에의 소소한 복수들은 피식하는 웃음을 가져다준다.

p.s2
영화 <아멜리에>의 리뷰에서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상의 사소함이다. 그녀가 살아가는 것, 그녀가 행하는 행동들이 일상 속에서의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일상의 사소함 들은 영화 고유의 색감이 더해져서 더 따뜻해지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래서 이런 사소함들, 따뜻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사랑받는 거라 생각한다.

어떤 리뷰어는 영화에 등장하는 아멜리에의 카메라가 단순히 카메라를 넘어서서 관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영화의 자체의 색감도 카메라와 연관이 있다고. 남자 친구가 된 니노와 아멜리에를 연결해준 것도 증명사진기와 앨범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 생각한다.
- 해당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ulpessay/221289769995

 

 

 p.s 3
영화 속에서 프랑스 영화답게(?) 철학적 명대사가 많이 나온다.

"인생이란 상연되지 않는 연극을 위한 리허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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